‘조선 여인상의 표본 의열문(義烈門)’ 소고(小考) 5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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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여인상의 표본 의열문(義烈門)’ 소고(小考) 5편
  • 김병서 
  • 승인 2023.12.21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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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립(崔岦 1539~1612년)의 헌사(獻辭)
중국의 학자들로부터 명문장가라는 격찬을 받은 인물로 문장으로 시대를 풍미했던 최립은 헌사로 신씨부인의 거룩한 죽음을 찬양했다. “부제학(副提學) 신숙정(申叔正)의 죽은 딸에 대한 만가”란 제목으로 “남쪽 시골로 출가하였다가 왜적의 칼날을 맞고 시부모 및 여섯 살 된 딸과 함께 동시에 피해를 당하였다”란 설명이 붙어있다.

최립의 헌사는 피지배계급인 관기(官妓) 신분으로 “의기(義妓)”라 불리는 논개(論介)를 위해  1779년(정조 3년) 다산 정약용이 쓴 추모 시에 비견될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지배계급인 명문 양반가(兩班家) 출신 여인으로 조선의 도덕적 지배철학에 부합되는 “의열(義烈)”이란 칭호를 얻어 “조선 여인상의 표본”을 구현한 신씨부인의 거룩한 죽음과 행장은 지배층의 도덕적 우월성과 사회적 정당성을 높여준 일이였다. 

원수가 창을 베고 수성(守城)을 독려하는 때에
왜적이 우리 마을까지 들이닥칠 줄 알았으랴
천병이 우레처럼 남하한다는 소문 들릴 때에
장사 봉시(長蛇封豕) 왜놈들이 기승을 부릴 줄 알았으랴
여자가 시집가면 부모 형제와도 멀어지는 법
한 번 출가한 뒤로는 외출도 삼갔는데
시부모며 아이와 함께 칼날에 쓰러지다니
하늘의 태양이 밝은 때에 차마 이럴 수 있단 말인가
난옥(蘭玉)과 같은 자질이라 미친 개들도 탐을 내어
겁박해 끌고 가려 해도 어찌 그게 될 말인가
온전히 하여 돌아감이 몸보다 귀한 게 더 있나니
후회할 것도 부끄러움도 하나 없어라
생각하면 대대로 덕을 닦은 명가(名家)의 따님
어찌 다만 장부가 듣고 귀감으로 삼으리요
조만간 빗돌에 크게 새겨 우리 절부를 기리리니
그때는 나도 노래하며 길 옆에 함께 세우리라

元帥枕戈督諸城以守兮
孰曰賊至我邑里
天兵如雷如霆先聲南下兮
孰曰恣爾蛇與豕
女子有行遠父母兄弟兮
一入門後不下堂
公姑弱息相牽以當白刃兮
胡忍臨此天日光
蘭姿玉質彼狺然者知其媺兮
欲以去安可得
全而歸之有大於體膚者兮
無所悔亦無所恧
緬惟詩禮之家木久喬兮
豈獨丈夫聞以式
早晩貞珉大字著節婦兮
吾且歌之靷道側
[출처 : 한국고전번역원 - 간이집 제6권 난후록(亂後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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