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李埈 1560~1635년)의 申氏行蹟
호는 창석(蒼石)으로 문집은 1631년 간행된 창석선생문집(蒼石先生文集)이 있다. 첨지중추부사, 승지, 부제학 등을 역임했으며 정경세와 더불어 서애(西厓) 유성룡(柳成龍 1542~1607)의 학통을 이어받았고, 정치적으로는 남인세력을 결집하고 그 여론을 주도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다고 한다.
신씨행적은 창석선생문집권지십이 / 잡저(蒼石先生文集卷之十二 / 雜著)에 실려있다.
신씨행적
유생(儒生)인 김덕민 처 신씨는 부제학 신식의 딸이다 / 타고난 성품은 효행이 있고 유순해 시부모를 정성을 다해 모셨고 / 노비와 남편의 첩에게는 따뜻한 마음으로 대해 마을에서 매우 칭찬했다 / 정유년(1597년)에 왜적을 피해 산중으로 피난 가면서 칼을 의대 사이에 차고 꼭 필요할 때는 죽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 하루는 갑자기 왜적을 만나 신씨는 덕민의 첩과 함께 붙잡히게 되었다 / 신씨가 첩에게 말했다 “나는 죽기로 마음 먹었다 / 너는 왜놈들 말을 따르다가 기회를 잡아 달아나서 피해야 한다” / 왜적이 그 용모와 안색을 보고 끌고 가려 위협하자 / 신씨부인이 큰 소리로 왜적을 꾸짖으며 말했다 / “네 놈들이 나를 욕보일 수 없다. 빨리 나를 죽여라” / 오른손으로는 칼을 빼어 휘둘렀고 왼손으론 움직이지 않도록 나무를 부여잡고 있었다 / 화가 난 왜놈이 오른팔을 내리쳤고 부인은 땅에 쓰러져 절명했다 / 이때 나이가 이십 오세였다. 계집종인 연지가 부인의 아이를 업고 곁에서 숨어 있었는데 / 주인이 피해를 당하는 걸 보고 나와서 끌어안고 부인을 붙잡자 / 적들이 연지와 부인의 아이까지 죽였다 / 덕민의 첩이 적중에서 도망쳐와 그 일을 말하며 슬픔을 억누르지 못했다 / 관찰사인 김신원이 왕에게 아뢰어 올리자 예관들 모두가 말하길 / 평소에 신씨의 행실이 굳고 엄했기에 난리 통에 이런 일을 할 수 있었다라고 했다 / 살아서는 효성스러운 순한 아내였고 죽어선 행실과 지조가 곧고 엄격한 여인이 된 것이다. / 옛 사람들 중에서 찾아봐도 신부인에 견줄 만한 사람이 드물다. / 마땅히 찬양하는 특별한 은전을 내려 후세 사람들이 따르도록 하기위에 정문복호 하라 명했다
申氏行蹟
幼學金德民妻申氏 副提學湜之女也 / 天性孝順 事舅姑甚謹 / 遇婢妾以恩 鄕里嗟異之 / 丁酉歲 避兵于山谷中 常佩刀衣帶間 有必死之志 / 一日 倭賊猝至 申氏與德民妾同被執 / 申氏謂妾曰 死吾志也 / 爾未應倂命 可以計避也 / 賊見其有容色 䝱與俱去 / 申氏抗聲罵曰 / 吾不爲汝辱 第速殺 / 我右手引所佩刀奮揮 左手攀木不去 / 賊怒擊其右臂 卽仆地而死 / 時年二十五 其婢燕之負主家兒匿其傍 / 見其主被害 出而抱持之 / 賊竝殺之 / 德民妾自賊中回言其事 悲咽不自勝 / 觀察使金信元 上其事 禮官啓曰 / 申氏平時所守堅礭 臨亂有此樹立 / 生爲孝順之婦 死作貞烈之女 / 求之古人 罕有其比 / 宜擧褒美之典 以勸後人 命旌門復户
(출처 : 한국고전번역원)
*정문복호(旌門復戶) : 열녀(烈女) 또는 의부(義婦) 등에게 상을 줄 때 그 문려에 홍문(紅門)을 세워 주고, 그 집에 조세(租稅)를 면제하여 주던 것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