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꽃,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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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꽃, 행복
  • 김종례(문학인)
  • 승인 2023.12.14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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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묘년 마지막 달력장을 넘겨놓고 한해동안 마음의 연동을 카톡으로 주고받는 요 즘이다. 아쉽고 부족했던 부분을 반성하고 소망의 새해를 계획하는 매듭의 달이 실 감 나는 요즘이다. 그런데 오늘은 새로운 세상이라도 만난 듯이 콧노래가 나오는  이변이 일어났다. 환경이나 상황이나 조건들이 더 나아진 것은 아닌데도 왜일까? 아마도 특별한 이유 없이 그냥 소프트하고 평화로운 순간을 행복이라고 하나 보다.
  모든 사람은 탄생의 순간부터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영장의 동물이리라. 시절의 계곡마다 행복의 기준과 단계가 달랐을 뿐, 행복한 능선은 분명히 존재하였던  것 같다. 신생아는 젖꼭지를 입에 무는 그 순간이 파라다이스일 것이고, 네 살 배기 손주에게 장난감을 안기면 할매 볼에다 뽀뽀공세를 퍼붓는걸 봐도 알 수 있다. 사춘기가 되어서는 사랑과 관심의 대상이 친구에게로 향하며, 유유상종(類類相從) 모여서 노는 것으로 행복감을 추구했었다. 행복을 위한 생활수칙이나 요소들을 궁금해 하면서, 넝쿨째 굴러 들어올 것만 같은 행운을 고대했었다. 그리고 불혹, 지천명, 이순의 나이를 지나면서 진정한 행복은 혼자서는 추구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간다. 누구나 젊은 날의 혼란스러움과 인생의 실패경험을 기반으로 행복의 조건을 나름대로 정립하며 살아가는 것이리라. 
  첫째는 안분지족(安分知足)의 자세라고 생각한다. 즉 나이와 환경에 맞는 단순한 목표설정과 자기 분수에 만족하는 삶이 행복의 첩경일 것이다. 충암 김정 선생은  욕탐비보 이상지보(慾貪非寶 以喪至寶)란 말씀을 하셨다.‘보배도 아닌 과한 탐욕으로 지극히 보배인 몸을 해친다’는 뜻이다. 허망하고 수준 높은 목표점을 세워놓고 밤낮으로 고민하던 청춘을 뒤돌아보면 쉽게 이해가 되는 대목이다. 행복하기 위하여 외부환경이나 조건들을 상승시키는 게 아니라, 최소형의 행복조건 안에서 최대의 행복을 찾아가는 유일한 출구 감사함을 갖는 일이다. 감사함이 부족한 것은 지혜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바로 안분지족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첨단의 문화생활을 누리는 선진국보다도 미개국가일수록 행복지수가 높은 것도, 그들의 삶이 단순하고 가볍기 때문이다. 욕망의 결박을 벗어나 안분지족하는 지혜야말로 보배로운 영약임이 분명하리라.     
  둘째는 행복이란 온전한 셀프(Self)라고 생각한다. 인생은 스스로 결정하고 조정하며 창조하는 대로 흘러가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서 물려받은 물질이나 가치관과 누군가의 평가와 간섭에 신경 쓰는 삶은 불행하다. 권력, 지위나 어떤 특수한 물질, 이런 걸로는 인생고해(人生苦海)를 면치 못한다는 얘기와도 상통한다. 일반적인 상식이나 틀, 권위주의, 맹목주의 등 사회적 결박에서 벗어나서, 고정관념을 와장창 부숴버리는 용기와 결단력이 필요하다. 행복은 이 시대 새로운 패러다임인 발상의 전환에 능란한 사람이 누리는 특권일 것이다. 나도 작은 정원을 다스리는 가장 큰 이유가 여기에 있었음을 알아차리는 순간이다, 여름 정원을 가득 채웠던 푸른 잎과 고왔던 꽃들만이 전부인 줄 알았는데, 춘하지절보다 맑고 고요한 우주 하나가 가득한 겨울정원! 행복으로 가는 길이 얼마나 아이러니컬한지를 깨닫게 된다. 
  셋째, 중용 행복론에 나름대로 공감하게 되었다. 불행과 행복이 반반이면 저울눈금은 움직이지 않지만, 불행 49%, 행복 51%이면 저울은 행복 쪽으로 기울기 마련이라고 한다. 우리 삶이 행복하려면 많은 조건들이 필요한 게 아니라, 단 1%만 더 있어도 된다는 논리에 입각한 이론이다. 때로는 그 1%가 부족해서 불행하다고 느낄 때도 있지만, 긍정적인 마음으로 역발상을 한다면 행복은 분명 찾아올 것이다. 그러기에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일상의 소확행을 최소가치화로 삼아볼 일이다. 요즘 같으면 따뜻한 아랫목, 잊었던 친구의 엽서, 감미로운 클래식 음악, 나목 위 텃새들의 지저귐, 책갈피에 꽂힌 고운 단풍잎, 기도할 만한 작은 쪽방, 그리고 잔잔한 추억과 그리움까지 모두가 저울눈금을 기울게 하는 12월의 행복이리라. 
  누구나 마음의 꽃 한 송이 피우려고 최선과 혼신을 다하여 달려온 한해가 아닌가! 지금은 자신을 옭아매었던 과욕의 터널을 벗어나서, 정신적인 해박과 자유를 꿈꾸며 새해를 맞이해야 할 시점이다. 모두가 한해의 역경을 무사히 통과한 후에 맛보는 참 조이(Joy), 참 행복을 만나는 벽두새벽이길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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