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부생원김덕민처신씨묘갈명 병서
만력이십오년(1597년 선조30년) 겨울 충청도관찰사 김신원이 아뢰기를 / 보은현감 유옥이 올린 보고서에 근거하면, 보은현 사람 생원 김덕민은 왜적이 쳐들어오자 / 부모와 처 그리고 첩과 함께 산속으로 피하던 중 적과 마주쳤습니다 / 왜적은 부모를 먼저 해치고 덕민을 칼로 쳤으나 덕민은 다행히 죽지 않았습니다 / 덕민의 처와 첩을 보고 핍박하자 덕민 아내 신씨가 꿋꿋하고 힘차게 첩에게 말했습니다 / “나는 죽을 것이다 너는 꾀를 내어 탈출해 돌아가 남편을 모셔야한다” / 드디어 칼을 빼어 들고 엄한 모습과 목소리로 왜적을 꾸짖었습니다 / 왜놈이 팔을 쳐서 끊어 버리자 부인은 땅에 쓰러져 절명했습니다 / 여종인 연지가 신씨 애기를 업고 가까운 곳에 숨어 있다가 / 뛰쳐나와 구하려 했으나 그 아이와 함께 모두 살해당했습니다 / 첩이 탈출해 돌아와 그 처참한 상황을 남김없이 말 했습니다 / “신씨의 절의는 선악을 파악하여 정려하도록 예조에 하명하는 것이 마땅합니다”하였다 / 예조에서 아뢰기를“절의를 가지고 항거한 죽음은 남자도 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 곧은 절의를 밝게 빛내는 것은 국법으로 서둘러서 해야 할 일입니다 / 마땅히 신씨를 정문을 세우고 복호하도록 명해서 국가에서 그 미덕을 찬양하는 뜻을 보여줘야 합니다” / 좌승지인 최천건이 아뢴대로 윤허한다는 전지(傳旨)를 공경히 받들었다 / 삼가 생각건대 / 신씨는 집안이 번성한 고령인으로 영의정인 고령부원군 문충공 숙주의 육대손이다 / 증조부는 이조판서에 증직되었고 할아버지는 동지중추부사인 중엄이며 / 아버지는 대사헌 식이고 어머니는 광주 노씨로 현감인 개의 딸이다 / 계유년(1573년) 8월생으로 얼굴이 매우 단아하고 아름다우면서 / 머리카락은 복사뼈까지 내려왔으며, 성품은 유순하고 화락하면서 성실했다 / 열녀전, 여계 및 내훈과 삼강행실 등의 책을 즐겨 보았고 그 뜻에 능통했다 / 십오세에 김덕민에게 시집갔다 / 김덕민은 현감 가기의 아들인데 현감은 대곡 성운선생 문하에서 배웠다 / 상당한 집안의 법도가 있어 신씨부인이 부도(婦道)를 이어 받았다 / 첩과 있으면서 서운한 기미도 보이지 않았고 / 임진왜란 때 많은 부인들이 이유 없이 죽는 것을 보고는 / 개연하게 의를 위해 자결할 뜻을 가지고 손에서 칼을 놓지 않았었는데 / 평소에 본인이 굳게 마음먹은 대로 죽음에 이르렀다 / 지아비의 첩에게 돌아가서 남편을 모시라고 침착하게 말하고 의연하게 죽음을 맞았습니다 / 끝내 첩이 탈출해 돌아와서 의열(義烈)에 대해 말하며 슬픔으로 흐느낌을 멈추지 못 하였습니다 / 그 스스로 올바르게 처신했고 아랫사람들을 은혜로 돌봐줘 사람의 마음을 감복시키는 것이 이와 같았다 /
사망일은 정유년 구월 십칠일로 이십 오세였다 / 딸 둘을 낳았는데 연지가 업고 죽은 아이가 큰 딸이고 / 둘째는 현재 공홍도 관찰사 윤효전 부인으로 공홍은 옛 충청도다 / 신씨 묘는 보은에 있고 관찰사가 장차 표석을 세울 것이다 / 부친인 대사헌 신식이 눈물을 닦으며 묘갈명을 지어 묘갈을 만들었다 / 생사의 갈림은 잠시 동안의 일로 / 그 차이도 잠깐일 뿐으로 끝은 이미 정해져 있다 / 그래서 본래는 잠시의 일이다 / 여자로서 군자에 이른 것은 / 예나 지금이나 오랫동안 아! 신씨부인이다
烈婦生員金德民妻申氏墓碣銘 幷序
萬曆二十五年冬 忠淸道觀察使臣金信元啓 / 據報恩縣監柳沃呈 該縣人生員金德民 當倭入境 / 與父母妻妾遇賊于山中 / 賊先害其父母 次刃德民 德民幸不死 / 又見其妻妾迫之 妻申氏奮然語其妾曰 / 吾死矣 汝以計可歸奉君子 / 遂拔劍罵賊 聲氣俱厲 / 賊擊斷其臂 仆地而絶 / 婢燕支負申氏兒 竄其傍 / 突出救之 與其兒皆遇害 / 其妾還言其狀甚悉 / 申氏節義 合行㫌別事下禮曹 / 禮曹啓曰 抗義就死 男子之所難 / 顯節昭貞 王章之所急 / 申氏宜令有司㫌門復戶 以示國家褒美之意 / 左承旨臣崔天健敬奉傳旨依允 / 謹按 / 申氏高靈大姓 領議政高靈府院君文忠公叔舟之六代孫 / 曾祖贈吏曹參判 祖仲淹同知中樞 / 考大司憲湜 妣光州盧氏 縣監塏之女 / 以癸酉八月生 端美有殊容 / 髮及踝 性柔順雍慤 / 喜看列女傳,女誡內訓,三綱行實等書 通其義 / 年十五 歸于金 / 金卽縣監可幾之子 縣監學於大谷成先生之門 / 頗有家法 申氏承以婦道 / 處妾侍無幾微見於辭色 / 壬辰之亂 見婦人多死不得所 / 慨然以義自决 大刀不離于手 / 是其平日所定者確 臨死 / 從容勉夫妾以歸奉君子 毅然而終 / 卒之其妾歸言義烈而悲咽不自勝 / 其自處之正 逮下之恩 有以服人心者如此 / 死之日 是丁酉九月十七日 得年二十有五 / 生二女 長卽燕支所負而死者 / 次適今公洪道觀察使尹孝全 公洪 卽古之忠淸 / 申氏墓在報恩地 觀察將就竪石表 / 大憲公抆淚索銘 爲之銘云 / 死生際 暫時事 / 暫時差 終苟已 / 由素定 能暫時 / 士千一 女乃爲 / 嗟嗟申 今古彌 (출처 : 한국고전번역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