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여인상의 표본 의열문(義烈門)” 소고(小考)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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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여인상의 표본 의열문(義烈門)” 소고(小考) 1편 
  • 김병서
  • 승인 2023.11.23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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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여는 말
의열문(義烈門)은 1598년 세워진 정문으로 흔히 보는 열녀 또는 효부 정문들 보다 그 가치가 더 크고 높은, 차원이 다른 정문으로“조선 여인상의 표본”을 구현한 거룩한 행적이 서려있다.
북실김씨라는 애칭으로도 불리는 경주김씨 판도판서공파 중시조 장유 선생께서 처향인 이곳 보은에 입향한 것으로 추정되는 1367년(또는 1368년) 이후 3대 을식 선생이 이거해서 터를 잡아 집성촌으로 형성되기 시작한 보은읍 종곡리 일대는 이 땅을 딛고 살아온 선조들의 흔적이 곳곳에 산재해있는 곳으로 적지 않은 문화유산(적)을 만나 볼 수 있는 유서 깊은 마을이다.
마을의 주산인 종산(북산) 아래 1969년 구룡저수지(종곡저수지)가 생기면서 옛 정취를 온전히 보전하지 못한 아쉬움은 있으나 오랜 세월 속에서 형성되고 보전되어온 유적(물)을 통해 옛사람들의 뜻과 정신만은 오늘을 사는 사람들에게 오롯이 이어져 오고 있어 무궁한 후대들에게 전해져 갈 것이다.
그 유적(물) 중 하나가 바로 김덕민의 처 고령신씨 부인을 기리는 정려인 의열문으로 모정골이라 불리는 종산 아래 마을에서 고고한 기품을 자아내며 절개와 지조의 상징 소나무를 앞세우고 의연한 자태로 우뚝 서있어 거룩한 행장을 아는 이들의 옷깃을 여미게 하고 있다.
판액에는“義烈 贈嘉善大夫戶曹參判 兼 同知義禁府事 行折衝將軍僉知中樞府事 金德民 妻 贈貞夫人高靈申氏之門(의열 증가선대부호조참판 겸 동지의금부사 행절충장군첨지중추부사 김덕민 처 증정부인고령신씨지문)”이 기재되어 있다.
여자는 열녀 또는 효열이라 불리는 정려를 받았으나 나라에 대한 충(忠) 의미가 포함된 “의열(義烈)”이란 특별한 명정을 받은 것이다. 여성으로 “의열(義烈)”정려를 받은 또 다른 사례를 찾을 수 없는 상태로 국내에서는 신씨부인이 유일한 것으로 보인다.
조선왕조 이후 국가 사회적으로 절대적 위치를 차지했던 성리학적 전통이 과거에 비해 약화되고 있지만, 역사적 인물에 대한 평가는 시대적 한계를 인정하고 해석해야 하기에 신부인의 행장은 성리학적 가치관에 기반을 둔 시대정신과 도덕기준을 실천한 고귀하고 거룩한 행장으로 더 많이 알려지고 전해지도록 해야 한다.
그 시작은 국가(지방)문화재등록이라 생각한다. 국가(지방)문화재로 관리받아야 할 차고 넘치는 의미와 가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의열문의 역사적 의의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아 아쉽고 안타까워 그에 대한 당위성을 다음과 같이 살펴보았다.
첫째, 신부인의 거룩하고 고귀한 행장을 상세하게 기록한 기사가 조선시대를 이해하는 데 있어 가장 기본적인 문헌사료인 조선왕조실록(선조)에 실려 있다.
둘째, 1617년 백성들 교육 목적으로 간행된 예서(禮書)의 일종인 동국신속삼강행실도 4집에 행장이 기사와 그림으로 실려 있다.
셋째, 성리학적 가치관에 기반 한 조선의 여인상을 구현해 내린 정려문으로 당대는 물론 현대에 이르기까지 많은 지식인과 대문호들이 행장을 기리고 찬미하는 글을 남겨 놓았다.
넷째, 나름의 특별한 가치를 인정받아 문화재로 지정받은 열녀문과 효자문등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는 높고 큰 정신적 가치를 오래도록 전해줘야 할 기반이 되는 문화적 유산이며 자산이다.
다섯째, 같은 날 맨손으로 왜적에 항거하다 순절한 시부모인 일구당 김가기 선생 부부의 숭고한 항왜(일)정신이 함께 스며있는 정려문이다.
여섯째, 관련된 인물들이 지역과 국가에 남긴 역사적 역할이 결코 적지 않음을 함께 살펴봐야 한다(외손인 남인의 거두 백호 윤휴 및 남편 김덕민의 후취부인과 그 소생들)
일곱째, 일부 후손들의 개인적 정성만으로 의열문과 그 주변들이 관리되고 있으나 대부분 고령자들인 관계로 영속성을 담보할 수 없고 안내판 등은 시급히 수선해야 할 상태다.
더 많은 사람들이 문화유산을 접하고 향유하게 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선 널리 알려 나가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미술사학자 유흥준씨는 그의 명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고 보면 전과 다르게 보인다”란 말을 했다.
역사와 문화유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신부인의 고귀하고 거룩한 행장을 알게 되면, 의열문을 전과 다르게 볼 것이라 확신한다.
문헌사료 내용을 알리고 전하려는 목적으로 필자의 주관적 해석은 최소화했음을 밝혀두며, 의열문에 깃들어 있는 조선의 여인상과 숭고한 항왜(일)정신을 되새겨 보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다음호에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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