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십자 회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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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십자 회비 
  • 최동철
  • 승인 2023.11.23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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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도 대한적십자사로부터 회비 납부를 희망하는 청구서가 우편 배달됐다. 곧 한 해를 마무리할 때가 다가왔음을 알려주는 소식이다. 또한, 홍수 등 천재지변으로 인한 피해 때 도움받았던 고마움에 대해 보은한다는 의미와 비록 소액 성금이지만 적십자의 인도주의적 활동에 동참한다는 느낌을 받게 하는 흐뭇한 청구서이기도 하다.

 익히 알고 있듯 적십자 운동은 지금으로부터 164년 전인 1859년 솔 페리 노 전투에서 다친 군인들을 돕기 위해 스위스 사업가인 앙리 뒤낭이 세운 민간 구호 단체에서 비롯됐다. 그는 전쟁의 참상을 목격하고, ‘솔 페리 노의 회상록’을 출간했으며, 이 책은 국제적십자 창설의 계기가 됐다.

 솔 페리 노 전투는 이탈리아 북부 롬바르디아 지방에서 치러졌던 제2차 이탈리아 독립전쟁 중 승패를 결정한 대규모 전투였다. 프랑스와 사르데냐 연합군 15만 명과 17만 명의 오스트리아 제국군이 우중이라 총포를 사용하지 못하고 거의 백병전이다시피 싸워 프랑스-사르데냐 연합군이 승리를 거두었다. 뒤낭은 전쟁터에선 중립적인 구호 조직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마침내 1863년 8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16개국 대표들이 모여 국제적십자사 설립을 위한 회의를 개최했다. 회의에서 국제적십자사의 목적과 활동 원칙이 채택되었고, 뒤낭은 국제적십자사의 창설자이자 초대 총재로 선출됐다. 이때부터 국제적십자사는 전쟁터에서 다친 군인뿐만 아니라, 재난 피해자, 난민, 이주자 등 도움이 필요한 모든 이들을 돕는 활동을 해왔다.

 우리나라 대한적십자의 활동역사도 120년이나 된다. 1903년 대한제국은 당시 국제법이나 다름없던 제네바 협약에 가입했다. 1905년 10월 27일, 고종황제는 대한적십자사 설립을 위한 칙령을 반포했다. 나라를 잃은 때인 1919년 상해 임시정부 하에서도 암암리 독립운동을 지원하고 재외동포를 구호하는 활동을 펼쳤다.

 1950년 한국전쟁에서는 수백만 명의 피난민을 위한 구호 활동했다. 또한, 헌혈 운동, 재난 구호, 국제 협력, 사회봉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인도주의 정신을 바탕으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한편 사회 발전 기여에 노력하고 있다. 남북 이산가족 문제나 북한의 영유아 영양결핍 등 식량난에도 인도적 차원의 지원이나 문제해결에 나서고 있다.

 1990년, 전 세계인의 관심을 끌었던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의 500마리 소 북한 보내기는 적십자사의 큰 성과였다. 1979년 7월 19일 보은군의 대홍수 때, 적십자는 수재민을 돕기 위한 긴급구호 활동을 펼쳤다. 당시 자료를 보면 임시 거주 시설 마련 등 총 1,000톤의 구호물자를 지원했다. 식량이 800톤, 의약품이 100톤, 구호 물품이 100톤이었다.

 지난해에도 적십자사는 재난 구호, 국제구호, 공공 의료사업 등을 위해 약 1,800억 원을 사용했고, 도움이 절실한 기 백만 명을 지원했다. 자율적 국민성금 적십자 회비가 마중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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