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가삼간 태웠던 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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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가삼간 태웠던 빈대 
  • 최동철
  • 승인 2023.11.16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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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때아닌 ‘빈대’ 출현으로 전국이 비상이다. 빈대는 이, 벼룩과 더불어 인류가 태초 혈거 생활을 할 때부터 공생하다시피 한 흡혈 곤충이다. 빈대는 본디 동굴 속에서 박쥐에 기생하여 살았다. 숙주를 박쥐에서 인간으로 전환한 진화 종이 빈대(베드버그·bedbug)이고, 여전히 박쥐에 기생하는 원종을 박쥐 빈대(배트버그·batbug)라 한다.   

 특히 빈대는 노린재 아목 소속이라 그런지 특이한 노린내를 분비한다. 미나릿과 한해살이풀인 고수를 ‘빈대 풀’이라는 별칭으로도 부르는데 풍기는 냄새가 같기 때문이다. 한자로도 취충(臭蟲)이라 부른다. 기생 숙주이자 천적인 박쥐에게 잡아 먹히지 않기 위하여 냄새가 나도록 진화했다고 추정된다.

 어쨌든 빈대는 아주 특이한 별종 중의 하나다. 빈대들의 교접 형태를 유튜브 등 동영상으로 보면 아연실색게 한다. 수컷의 성기는 뾰족한 갈고리처럼 생겼다. 암컷은 생식기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빈대 수컷이 교미할 때 상대의 복부 부분을 가시가 있는 성기로 이곳저곳 마구 찌른 뒤 정액을 주입해 버린다.

 빈대는 외상성 사정(traumatic insemination)이라는 특이한 번식을 하는 생물 중 하나다. 개방순환계이기 때문에 몸 아무 곳이나 직접 사정해도 알맞은 위치까지 정자가 갈 수 있다. 암컷은 정액을 몸에 모아뒀다가 알을 낳기도 하여 마치 무성생식을 하는 듯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암컷들은 이 과정에서 상처를 입고 죽음을 맞이하기도 한다.

 아마도 60, 70년대 군대 생활을 한 남성들이라면 겨울 내의 겨드랑이와 사타구니에 매달고 다녔던 ‘DDT 주머니’를 기억할 것이다. 엄지손가락 두 개 크기의 주머니를 만들어 강력한 살충제 DDT 가루를 채운 뒤, 내복 양 겨드랑이와 사타구니 부근에 매달았다. 당시는 그만큼 이, 벼룩, 빈대가 많았다.

 오죽하면 ‘빈대 붙는다.’, ‘빈대도 낯짝이 있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다.’라는 속담이나 ‘빈대 미워 집에 불 놓는다.’‘집이 타도 빈대 죽으니 좋다.’란 농담마저 있을 정도로 우리나라에 흔했다. 불을 끄고 주변이 캄캄해지면 온몸이 스멀거리는 듯했다. 급기야 참다못해 벌떡 일어나 불을 켜면 빈대가 사방으로 도망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납작하고 작다는 특징을 살려 낮에는 벽의 틈 사이나 침대 이음새에 숨었다가 빛이 없는 밤이 되면 여지없이 기어 나와 모기 흡혈량 7배의 피를 빨았다. 이처럼 인류사에 기생하며 흡혈 왕국을 건설했던 빈대도 살상력이 뛰어난 DDT가 출현하자 거의 멸망되다시피 했었다. 허나 환경생태계 파괴문제로 DDT가 퇴출되자 기사회생한 빈대가 내성을 갖고 재출현하게 됐다.

 빈대는 감염병을 매개하는 곤충이 아니므로 각 개인이 방제해야 하는 사안이다. 행여 이러다가 옛 군대 시절처럼 겨드랑이에 살충제 매단 내의를 입게 되는 건 아닌지 걱정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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