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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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 이장열 (사)한국전통문화진흥원 이사장
  • 승인 2023.09.27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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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년 여름 무더위는 예년과 달리 햇볕아래서 조금만 움직여도 옷이 땀으로 흠뻑 젖곤 했다. 그러나 자연풍을 즐기는 나는 억지바람 선풍기나 애어컨을 즐기지 않는다.
사람들은 찌는 무더위를 피하여 계곡으로 떠밀려 들어왔고 한동안 동네도 번잡했었다. 그러나 더위가 한풀 꺾이면서 몰려들던 인총도 끊어졌고 청명한 하늘아래 조용한 농촌 들판은 밝은 황금색으로 변했다.
오곡이 풍성한 들판을 조용히 정관하고 있노라니 또다시 끈적한 땀내짜는 고래고함 소리에 기분을 잡친다. 국회에서 절대다수를 점하고 있는 힘 있는 야당의 추태를 보니 마음이 언짢다. 죄를 지었으면 판사 앞에 나가서 영장실질심사를 받으면 될 것을, 왜 저들은 판사 앞에 나가기가 싫어서 “나는 굶겠소” 하고 억지로 굶으면서 “정치탄압”이라는 말만 레코드판처럼 틀어대고 있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가서 하는 말이다. 더욱이 민심은 자기들이 챙기겠다고 설치니 그 거짓말에 누가 또 속겠는가. 추석이 임박해지자 ‘민생’놀이가 또 시작된 것이다.
고래로 추석은 설날과 더불어 2대명절의 하나였다. 추석에는 떨어져 지내던 일가친척들이 한데 모여 조상제사를 지내고 성묘를 한다. 제사는 생자와 사자의 만남이다. 사자를 산자처럼 대하는 제사에 대한 예부터 내려오는 생각은 다음과 같다. 즉, 사람이 죽으면 ‘혼비백산’(魂飛魄散)한다고 한다. 살아있을 때는 몸속에 같이 있던 혼백이 사람이 죽으면 흩어진다고 한다. 그 모양은 천기인 혼(魂)은 연기처럼 하늘로 날아가고 지기인 백(魄)은 땅으로 흩어진다.
이런 혼백과는 달리 신(神)은 전연 딴 세상에 존재한다. 무당들도 너무 멀리 있는 신과의 소통은 불가하다고 한다. 제사는 참신에 앞서 혼백을 불러오는 절차, 곧 ‘영신례’를 행한다. 향을 살라서 위로부터 천기인 혼을 부르고 울창주를 관지통을 통해 땅에 부어 지기인 백을 아래로부터 불러올린다. 이 둘은 사통팔달의 신주에 같이 모이게 되는데 참신례는 이후에 시작되는 것이다.
묘제례에서는 제전과 주위 청소, 제상준비, 제관의 임명 등 왕실 조상신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절차를 행한다. “영신례”(강신례)로부터 참신례, “송신례”와 분축, 철상까지 긴 시간과 복잡한 절차를 거처 제사가 끝난다. 민가에서는 제사가 끝나면 가족 모두가 제상에 있는 음식을 나눠먹으며 조상과 세상사 이야기에 꽃을 피운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면서 추석의 느낌도 옛날 같지가 않다. 어릴 때 뵈었던 그 많은 어른들은 모두 어디로 갔는지? 이제 내가 떠밀려 그 자리에 올라 사방을 살핀다. 기독교가 전래 이전, 즉 정조 이전 까지는 유교식 제사로 인한 사상적 갈등은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조상제사 문제로 새로 모셔온 며느리자식과의 의견차이로 부자간에도 의가 상해있는 집안이 있다. 문제는 이것뿐이 아니다. 옛날에는 장지도 풍수가 잡아준 명당에다 썼다. 그런데 명당은 산세에 따른 길지일 뿐, 현장상황은 고려되지 않으며 참배 후손들에 대한 고려는 없었다. 특히 자유당정권 시절에는 온 국토가 벌거숭이산이어서 사방사업으로 성장이 빠른 아카시아를 식재했었다.
그런데 오래지 않아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카시아로 욱어진 산속에 방치된 분묘는 “묵은 장(葬)”으로 변해버려서 후손의 접근이 어려웠다. 이에 파묘하여 현장 화장하고 바람에 분골가루를 날려버리는 집이 많았다. 이런 판에 명당이 무슨 소용이 있으며 망자가 화장을 원하지 않았다면 또한 허무한 일이다. 대개 그런 자식며느리들은 부모의 돈과 유산에만 관심이 있을 뿐, 부모의 “귀신나오는” 유품은 없애버린다. 그들은 어릴 때 추억거리도, 추억도 없다. 죽으면 그뿐이라는 생각일 뿐이다.
우리가 과연 인생을 잘 살고 있는가? 즐거운 추석 제사 이야기 끝에 괜히 우울해진다. 부모제사와 성묘가 과연 귀찮고 쓸 데 없는 헛일이기만 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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