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 숙인 벼를 바라보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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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 숙인 벼를 바라보며 ~  
  • 김종례(문학인)
  • 승인 2023.09.14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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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리도 없이 지나가는 세월의 발걸음에 타박타박 찾아온 9월의 소리가 어우러져 가을이 되었나 보다. 쥐똥나무 울타리를 넘어온 눈부신 아침 햇살이 구슬처럼 매달린 이슬을 말려주더니, 내 시름도 거두어 가려는지 종일토록 맴돈다. 
  나무베란다를 지나서 문전옥답으로 나가보니 어느새 이리도 알알이 여물었을까! 
모내기를 한지가 불과 엊그제만 같은데 통통하게 매달려 윤기 흐르는 벼이삭들이 고개를 숙이고, 신께서 풀어놓으신 산들바람이 계절의 혼들을 바꾸느라 동분서주한다. 자연의 색과 형태가 다양하게 변화됨을 절감하기에 딱 좋은 계절이 되었으니, 세월을 탓해서 무엇하랴~ 지천으로 널려있는 홍유성죽의 교훈을 배우는 9월에 내가 살아 있으니 말이다. 9월은 마음을 무한정 열어놓고 우주의 변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싶은 청명한 달이다. 신은 아무리 힘든 상황에서도 자연과 함께 성숙하길 바라시며 가을을 선물하셨나 보다. 철따라 변화하는 자연의 빛깔과 성숙이 우리네 인생에 무슨 의미를 부여하는지를 가르치시는 중이다.  
  <프랑수아 바리용>은 그의 저서 <흔들리지 않는 신앙>을 통하여 다음과 같은 대목을 제시하였다.‘변화를 내포하는 성장이란 외적인 변화를 뜻하는 자람(Grow)뿐만 아니라, 내적인 변화인 성숙(maturity)을 반드시 동반해야 한다. 어른은 커다란 아기만은 아니어야 하고, 여자가 커다란 소녀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나비는 커다란 애벌레가 아니며, 이삭은 커다란 씨앗이 아니듯이 하느님을 커다란 사람이라고 하지 않음과 같다. 변화된다는 것은 옛적의 사고나 관념이 성숙하면서, 다시 신령스러운 영적 나무로 태어난다는 광의의 의미가 있다.’라고 하였다. 자기 안에 감정과 생각이나 인격이 조금씩 바뀌게 되는 내적변화 속에서 영원히 꺼지지 않는 자아의 등불을 발견함은 자신과의 싸움과 인내를 통해서 획득한 최고의 수확이라고 말한다. 스스로의 노력으로 얻어진 건강의 꽃, 관계의 꽃, 평화의 꽃들도 행복이겠지만, 내면에 피어있는 독특한 자기 본성의 꽃이야말로 삶의 진가를 대변해주는 열매이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주위에 있는 모든 것은 변하지 않는 것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원래 감정, 욕망, 관념, 지식의 차원은 변하는 것이기에, 다른 이와의 소통과 교류가 변하지 않기를 바란다는 건 어리석은 일이라 하겠다. 반면에‘세 살 먹은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이 있듯이, 태어난 본성을 변화시키기도 생각처럼 쉽지만은 않은 것 같다. 대개는 상대방이 먼저 변화해 주기를 기대하며 살아가고 있지만, 사실상 중요한 것은 자신의 변화를 끊임없이 추구하는 일이 아닌가 싶다. 현재는 풍요로움의 생활을 즐기는 웰빙족과 외모지향을 중시하는 웰루킹족이 변화무쌍함을 추구하는 시대이지만, 대중적인 변화의 바람 실체를 음식, 건강, 레저, 외모만을 거론해서는 곤란할 것이다. 정말 긴요하게 요구되는 변화란 외형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내면을 성숙시킴으로써 미래에 대한 비전을 구축하는 일일 것이다.‘분재는 뿌리를 잘라주지 않으면 죽고, 사람은 생각을 바꾸지 않으면 빨리 늙는다’는 명언처럼, 내 미래 운명의 결과는 자신의 인생연출, 방향과 각도에 따라서 다양한 변화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미국 서부에 있는 브리스틀콘 파인은 지구에서 가장 오래 사는 신비함을 지닌 나무인데, 이 나무는 살아서 5천년, 죽어서 7천년을 살면서 100년에 3cm씩만 긁어진다고 한다. 또한 인간은 영적 신비함을 지니고 태어나 만물을 지배하고 다스릴 수 있는 두뇌와 신성을 가졌으나, 아주 더디게 내적 성장을 하면서 서서히 죽음의 문 앞에 다가가며 짧은 수명을 마치게 된다. 아주 더디게 외적 성장과 변화를 꾀하며 긴 수명을 자랑하는 자연의 초능력과 초라하게 단명하는 인간의 존재가 영원한 대립의 경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하겠다. 우리는 이러한 자연의 위대한 변화 속에서 내게 존재하는 시간과 공간을 어떻게 성숙시킬지를 고민하며, 긍정적이고 진취적인 인생 연출에 만전을 기함이 좋을 것이다. 진정한 웰빙과 웰루킹의 의미를 심사숙고 각성하며, 저 가을 들녘에서 고개숙인 벼이삭처럼 내적 성숙에 정성을 다해야 할 계절이다. 내면에 피어있는 영혼의 꽃 한 송이를 발견할 수 있는 행운의 가을이 되기를 스스로 주문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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