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북 성암리 성암안식원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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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북 성암리 성암안식원을 찾아서
  • 송진선
  • 승인 1991.03.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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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환경·시설로 외로운 노인 수발
유교가 우리의 전반적인 생활문화를 지배하고 있고 효(孝)를 행위의 근본으로 삼는 우리 한국 사회에서 양로원하면 인식이 그리 좋지않은 것만은 사실이다. 아무리 돈이 없어 가난하더라도 부모를 자식이 돌보지 않고 노후를 쓸쓸하게 양로원에서 보내게 된다면 주위에서는 '천하의 불효자식 같으니……'하고 손가락질 받기가 쉽상이나, 휴양을 위해서 요양시설에 보내야 하는데도 감히 못하는 형편이다.

서양처럼 사회보장 제도가 철저해 몸도 마음도 편히 지낼 수 있는 집의 개념으로 양로원을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오갈데 없고 돌볼 사람도 없는 사람들만 할 수 없이 가는 곳으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보은에서 청주로 가는 길 어귀 창리를 지나면 왼편으로 산 중턱을 깎은 자리에 네모 반듯한 양옥 단층의 건물을 볼 수 있다. 성암 안식원(원장 민석기) 종교인들의 신앙심 고취를 위한 기도원이 아니고 휴양지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병을 치료하기 위한 장소로서 건설된 요양원 이지만 수용된 인원의 성격상 요양원이라기 보다는 유료 양로원의 역할이 보다 진하다.

내북면 성암리에 위치한 유료 요양시설인 성암 안식원은 1989년 5월에 준공돼, 5월 30일 개원했다. 당시 국고보조 2억원을 지원받아 부지 2천6백86평에 건평 3백31평으로 세워져, 시설로는 방17개와 식당, 휴게실(오락실), 체육실, 목욕탕, 물리치료실 등 말끔히 단장한 시설물을 고루 갖추었을 뿐만 아니라 안마사 1명, 간호사 1명, 취사 및 세탁부 2명이 수용된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의 수발을 들고 있다. 50명을 정원으로하는 성암 안식원에 현재 입원, 거주하고 있는 노인은 할아버지 7명, 할머니 6명이다.

65세 이상을 입원요건으로 하여 보증금 5백만원에 독방을 사용할 경우 매월 24만원, 2인이 함께 기거할 경우는 매월 20만원씩을 내고 있다. 국고보조의 이와같은 요양시설은 전국에서 모두 8개가 준공 되었지만, 문을 열고 운영되고 있는 곳은 성암 안식원을 비롯한 단 2곳 뿐이다. 장롱, TV, 정화 등 숙박업소인 호텔과 같이 완벽한 내부시설을 갖추고 있어서, 소요되는 운영비가 상당해 몇 안도는 할아버지나 할머니들로부터 생활비조로 받는 금액으로 안식원을 운영하기란 많은 어려움이 따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입소자가 많지않고 지원이 전혀없어 경영상 어려움이 커서, 기본적으로 근무해야 하는 물리치료사, 촉탁의사, 안식원장, 총무, 영양사등을 모두 두지 못하고 사실상 물리치료사 대신 안마사, 그리고 총무와 간호사 등만 근무하는 형편이다. 군 관계자는 "얼마전에 보사부에서 성암안식원의 운영실태를 파악하고 갔는데 현재 안식원에서 필요로 하는 인원의 인건비 정도는 정책자금으로 지원이 되어야 한다"며 "이렇게 되면 입소할 노인들이 부담하는 생활비가 적어지니까 그동안 형편이 닿지않아 안식원에 입소하지 못한, 요양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더 많이 수용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라고 말한다.

운영의 어려움 못지않게 안식원에서 살고있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자식이나 손자를 보고싶을 때 못본다는 것이 가장 큰 어려움이라고 한다. 밥 해주고 빨래해주고 아프면 안마도 해주지만, 사람이 그리운 이들에게 제일 반가운 사람은 편지를 든 우체부들이다. 내북 우체국이 따르면 안식원에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한테 배달되는 우편물은 1주일에 보통 1통 정도이고 명절때에도 소포나 편지는 5∼6통 정도라고.

현재 성암 안식원에 수용되어 있는 노인들은 중풍을 앓고 있거나 휠체어에 몸을 의지한 경우도 있지만 이들은 대부분 가족들이 있지만 이들은 대부분 가족들이 환자 뒷바라지를 꺼려하거나, 자식들이 모두 외국으로 이민을 가서 혼자만 떨어진 경우가 많다. 노인들은 '자식들에게 폐가 되기 싫어서' '답답한 아파트 생활이 싫어서'라고 안식원에 들어온 이유를 들고 있다. 최기덕 할머니(80)의 경우는 2남3녀를 두어 전부 출가시켰지만 큰 아들과 딸들은 모두 미국으로 이민을 갔고 작은 아들이 청주에서 살고 있다.

큰 아들을 따라 미국에 가서 1년 정도 살았지만 고향의 흙냄새가 그리웠고 생활이 불편해 귀국, 청주에 살고있는 작은 아들 집에도 가보았지만 언제나 손님 같고 자식들 눈치가 보여 결국 성암 안식원으로 들어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자식들과 오랫동안 헤어져 지냈지 때문에 보고싶지도 않고 외로울 때면 신앙심으로 이기고 있다"며 "늙어지면 외로운 건 기정 사실아닙니까?"라고 되묻는 노인은 오랫동안 바깥 세상과 마음을 닫고 산 탓인지 혈육이 그립지만 절대 내색하지 않고 미소조차도 꼭꼭 감춘 모습이다.

성암 안식원이 개원한 후 제일 먼저 들어왔다는 2남2녀를 둔 박구희 할아버지(73)는 "젊었을 때 공무원 생활도 좀 했고 아내가 살아있을 때에는 청주에서 둘이 오손도손 살았는데, 4년전 아내와 사별한 후 서울 자식들 집으로 거처를 옮겼으나 마음이 편치 않았다"고 입소 동기를 밝힌다. "한달에 한번정도 자식들이 찾아오고 전화도 자주 오가지만, 아프거나 밤늦도록 잠이 오지 않거나 하면 자식하고 같이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한다" 며 외로운 감정을 억지로 삼키기도.

이렇게 따스한 정을 그리워하는 이들에게 가장 즐거운 시간은 TV극 '전원일기'를 시청할 때 연로한 탓으로 거동도 잘하지 못하는 80대 노할머니가 언제나 아들, 손자, 며느리의 보살핌속에 말벗하며 행복한 노후를 보내고 있는 것을 보며 희미한 미소를 띄우기도 하는 이들 노인들은 까치 한 마리가 울기라도 할라치면 아들녀석이 오려나하는 기다림으로 한숨짓기도 한다. 사회복지 차원으로 설립된 성암 안식원, 많은 돈을 투자해 설립되었으나 제대로 운영이 안된다면 큰 손실이며 그런면에서 따지면 성암 안식원은 그나마 성공작이다.

극도로 팽창된 이기주의가 황폐한 양로원의 모습을 드러나게 하는 것이다. 사고무친(四顧無親)인 사람들만 양로원에 간다는 인식은 버려야 한다. 또한 스스로가 편해지기 위해서 부모를 차가운 사회속으로 내몰기보다는 보다 좋은 환경에서 노인을 모셔야 한다는 공경과 효(孝)의 마음으로 양로원을 이용해야 한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정부의 지원확대와 복지시설을 제대로 인식하고 이용할 줄 아는 의식제고, 그리고 노부모를 제대로 봉양할 줄 아는 가족주의 정신의 성숙이 필요하다.

그것은 자식이 된 최소한의 도리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서라도 꼭 제고되어야만 한다. 그리고 좋은 환경과 시설을 갖춘 성암 안식원도 노인들의 황폐하고 외로운 마음을 달래주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숙고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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