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착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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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착보살
  • 오계자(보은예총 회장)
  • 승인 2023.08.24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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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박물관 대학 답사팀의 답사 중에 학가산 보문사에서 재밌는 그림 한 점을 내가 예사로 지나친 적이 있다.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친필 현판이 달려있는 극락전極樂殿에서 해설도 귓결로 듣고 그림도 예사로 보아 넘겼던 벽화 이야기다. 
어른, 아이, 젊은 아낙과 선비 모두 배를 타고 떠나는데 그 배를 놓치고 절벽바위에 앉아서 통곡하는 여인, 두 팔을 들고 애통해 하는 할아버지며 측은한 모습들만 기억에 남아 있다. 알고 보니 그 그림이 '반야용선도' 란다. 극락 가는 승객들만 태우고 떠나는 거라고 했다. 그때 좀 자세히 볼 것을 참 무지했다.
바로 어제 사찰장식의 상징이라는 주제로 강의 듣다가 슬라이드를 통해 반야용선을 놓치지 않으려고 외줄에 매달린 목각인형을 보았다. 
악착이 반야용선 타러 가다가 딱한 사람을 보고 
도와주다가 늦어버렸는데 부처님께서 선행보시 
하느라 늦은 것이니 밧줄을 던져 주셨단다. 
궁금하기 시작했다. 예사로이 스친 벽화를 
생각하며 당장 오늘아침 김밥과 물을 사들고 
청도 호거산 운문사로 달려갔다. 
벚꽃비가 휘날리는 사찰입구에서 만난 스님께서
내 발씨가 나비 날갯짓이라고 하셨다. 그만큼 
나도 모르게 들떠 있었나보다. 
첫머리 우주 같은 오백 살 소나무에 감탄하면서 곧장 악착보살부터 찾았다. 
아랫도리가 벗겨져 오동통한 알궁뎅이가 쏙 나왔고 신발도 벗겨져 맨발이다. 극락으로 가는 반야용선을 욕심 채우려다가 늦은 것도 아니고 보시 선행하다가 놓쳤기에 구조의 밧줄을 받은 손이다. 나처럼 매끈매끈한 손이라면 저 밧줄에서 미끄러져 지옥 바다에 빠졌으리라. 보시선행 하던 손이라서 잘도 잡고 50억년이 넘도록 보리를 위해 견딜 터이다. 그래서 '악착보살' 이란 호칭이 되었고 '악착같다.' 라는 단어가 생겼단다. 평생 쌓은 업보인 것을 악착같다고 아무나 되는 일은 아니겠지, 저 외줄은 일념정진 하라는 설법이리라.
  한참을 생각바다에서 헤매다가 내려와 사찰보다 더 웅장한 소나무를 다시 만났다. 동산처럼 우람하면서도 우아한 어머니 품처럼 온 지구를 다 보호할 듯 하늘 모양을 한 평화로운 소나무다. 이 땅에서 오백년을 넘게 살았단다. 해마다 삼짇날이면 승가대학 졸업생들이 막걸리 열 두말에 물 열두 말을 섞어서 소나무의 둘레를 파고 부어준다고 했다. 우주를 돌 듯 거닐면서 한숨 짓는 늙수그레한 비구니 스님의 말씀이 무겁다. 본디 소나무는 위로 자라는 것이 본능이지만 이 소나무님은 옆으로 뻗어 자라며 넓은 그늘을 만든다. 부처님께서 뭇 중생을 차별 없이 해탈로 이끌어 주시 듯, 낮게 낮추어 넓게 그늘을 나눈다고 하셨다. 나는 스님 앞에서 속으로만 주문했다. 나도 좀 이끌어 달라고. 내 속을 알아채기라도 하신 듯 스님께서 소나무조차 부처님의 뜻에 따르는데 사람들은 그걸 모르고 허우적이니 가련하다고 하셨다. 부끄러웠다. 
악착이 잡은 저 외줄은 一心으로 정진 하라는 뜻이리라. 지금부터라도 악착같이 일념정진하면 밧줄을 주실까 저 소나무를 닮을 수 있을까. 아니다. 일념정진보다 먼저 慾의 본능을 버리는 방하착이 아닐까 싶다. 허긴 그 방하착도 일념 정진이다.
종각을 바라보며 앉아서 깊은 생각에 빠졌을 때 저녁예불이 각각 전각마다 시작이다. 타종하시는 비구니 스님의 자태가 퍽 흥겹고 평화롭다. 내 마음도 한결 밝아진 것 같다. 룰루랄라 달려갔다가 돌아서서 일주문을 나서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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