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의 세시풍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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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의 세시풍속
  • 보은신문
  • 승인 1991.02.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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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고 한해의 복과 평안, 풍년을 기원
명절의 풍습이 달라졌다. 해마다 명절때면 고향을 찾는 귀성인파가 줄을 있지만 모처럼 가족친지들이 함께 모여 정을 나누고 명절의 의미를 새롭게 할만한 마땅한 놀이문화가 사라져가고 있다. 차례를 지낸 후에는 모여앉아 윷놀이 대신 고스톱판을 벌이거나 세배나 성묘보다는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구들을 만나 술마시고 즐기면서 그저 무의미한 명절을 보내기 일쑤이다.

이에따라 각 유흥가에서는 명절 때 한몫 볼 양으로 손님유치를 위한 눈길끌기 작전에 이미 돌입해 있다. 명절의 의미를 제대로 알고 이를 자녀들에게 일깨워주며 계승, 발전시키는 가정이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인 지금 4일간의 연휴로 이어지는 이번 설도 고스톱과 술로 적당히 보낼 것인지 이에 옛부터 우리조상들이 설에 행하여 왔던 전통세시풍속을 살펴봄으로써 그 의미를 되새겨 보고자 한다.

한해의 시작 옛부터 설은 상원(대보름), 단오, 추석과 함께 우리나라 4대 명절의 하나로서 그 가운데서 가정 큰 명절이다. 일년의 운수는 그해 첫날인 설날에 달렸다고 생각한 옛사람들은 모과 마음을 깨끗이 하고 모든 일이 조심하여 부정(不淨)타지 않도록 하며 일년내내 복도고 평안하며, 우순풍조(雨順風調)하여 풍년이 들도록 일원신이나 산천신에게 축원을 드렸다. 그래서 설날을 모든 것을 삼간다는 뜻으로 신일(愼日) 또는 단도일이라 부르기도 한다. 설이 들어있는 정월은 설날뿐만 아니라 설날부터 십이지상일까지의 열흘이 넘는 동간 금기를 지키면 즐겁게 지내고 보름도 크게 지낸다. 정초명절을 지나면 보름부터는 농사일과 집안일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설날
한해의 첫날이라 하여 원단(元旦), 원일(元日), '설'이라 부르는 설날은 한해의 머릿날이므로 세수(歲首) 혹은 연수(年首)라 부르기도 한다.

차례
설날 아침 일찍 일어나 몸을 씻고 새옷으로 갈아입는데, 이렇게 설날 새옷으로 몸치장 하는 것을 설빔이라 한다. 남자들은 의관을 단정히 하고 모여든 일가 친족과 함께 제를 올리는데 이때 제사를 정조차례(正朝茶禮)라 하고 차례는 제주(祭主)를 기준으로 2대까지를 봉제하며, 진설하는 제수는 보통 기제사와 같으나 세찬인 떡국은 반드시 올려야 한다.

세배
차례가 끝나면 어른들게 새해에 드리는 첫인사로 세배를 드리는데, 세배를 하면 세배를 받은 어른은 세배한 사람에 맞는 덕담으로 답례하고 어린이들에게는 세배돈을 주기도 한다. 그리고 일가친척과 이웃 어른을 찾아 세배를 다니는데 예전에는 일가친척에게 아무리 거리가 멀어도 꼭 찾아가 세배를 하였으며, 이것을 거르면 사람구실을 못하는 것으로 여겼다. 그래서 아주 먼 곳이라 하여도 보름안에 찾아가 세배를 하면 허물될 것이 없었고, 세배를 받았을 때는 설 음식을 대접하거나 어린아이들에게는 과자나 세뱃돈을 주었다.

세찬
세배가 끝나고 설에 먹는 음식을 세찬이라고 하는데 세찬은 집안에 따라 음식의 종류가 각각 다르지만 어느 집에서나 빼놓지 않는 것이 흰떡이다. 지금이야 방앗간에서 기계로 뺀 가래떡을 기계로 썰어 손쉽게 떡국을 끊여먹고 있지만 예전에는 떡쌀가루를 쪄서 넓다란 떡판위에 놓고 장정 두사람이 떡메를 휘둘러 쳐 떡을 만들었다.

떡이 다되면 부녀자들이 둥글고 긴가락이 도게 빚고, 그것이 식어서 눅눅해질 정도로 굳으면 얄팍하게 썰어서 떡첨을 만들어 두었다가, 설날아침에 장국에 쇠고기나 꿩고기를 넣고 때로는 만두를 빚어 같이 끊여 먹는다. 떡국을 먹어야 비로소 설을 쇠었다고 할 수 있을만큼 설의 가장 큰 시절음식이 떡국인지라 흔히 '떡국 몇그릇 먹었느냐' 하는 농담을 나이를 얼마나 먹었느냐 하는 뜻으로 통한다. 또한 설날에는 세주라 하는 찬술을 마시고, 그 밖에 시루떡 등 여러 가지 떡과 전을 만들어 먹는다.

성묘
설날 어른께 세배를 드리는 것과 같이 조상의 묘를 찾아가 성묘를 한다. 차례때 쓴 제수나 혹은 따로 마련한 술과 포, 돗자리를 들고 눈덮인 산길을 해치며 자손을 거느리고 산소에 올라가 조상께 인사드린 후 음복하면서 가장(家長)이 자손들에게 어른을 공경하고 조상을 섬기는 교훈을 준다.

세화(歲畵)
잡귀가 집안에 침범하지 못하게 하여 일년내 집안의 평안을 빌기위해 설날 흔히 닭, 호랑이의 그림을 그려 대문이나 벽에 붙이는데, 이때의 그림을 세화라 한다. 또 정초에는 교훈이 될만한 글씨를 써서 자제나 후배에게 주기도 한다.

복조리
설날 이른 아침에 조리를 사면 일년내 복이 있다 하여 조리를 사는데, 이때 사는 소리를 복조리라 한다. 조리가 밥을 짓기 위해 쌀을 씻으며 섞여있을 돌을 가려 내어 쌀만을 건져 네기 위한 것이든, 복도 그렇게 일어들어 오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일 것이다. 그래서 섣달 그믐날 자정 무렵부터 복조리 장수가 조리 사라는 소리를 외치며 지나가면, 자정이 지나 설날이 왔으므로 일찍 살수록 좋다하여 집집마다 앞다투어 조리를 사러 나온다. 또 미처 못산 사람은 날이 생 다음 사기도 하고 복조리 장수가 아예 집안에 던져 넣었다가 훗날 돈을 받아 가기도 한다. 복조리는 두 개를 엇갈리게 묶어서 손잡이가 아래로 향하도록 안방문 윗벽에 걸어 놓는다.

삼재법(三災法)
집안에 그해 삼재에 드는 가족이 있으면 설날에 매를 세 마리 그려 문설주에 붙여 삼재를 미리 막고, 삼재에 든사람은 모든 일에 조심하며 삼간다.

양광귀(亮光鬼)와 달기귀신
설날 밤에 하늘에 있는 꼬꼬할미(마고할미)가 이곳 저곳을 다니다가 민가에 내려와 아이들의 신을 신어보고 발에 맞으면 신고 가버린다고 하며, 이양광귀에게 신을 도둑맞은 사람은 한해동안 운수가 나쁘다고 한다. 그런데 벽이나 대문에 체(滯)를 걸어 놓으면 양광귀가 들어오다 체를 보고 신 훔칠 것도 잊고 체의 굼어을 세기 시작하여, 체구멍을 세다 세다 세지 못하고 날이 새어 첫닭이 울면 양광귀는 그대로 도망가 버린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를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들려 주면 아이들은 무서워서 얼른 체를 밖에 걸어 놓고 신발을 감춘 뒤 불을 끄고 일찍 잠자리에 든다. 양광귀와 같은 얘기로는 달기 귀신의 이야기도 있다. 정초에는 하늘에서 헤매던 달기 귀신이 하계(下界)로 내려왔다 가는데, 인가에 들어와 발에 맞는 신발을 훔쳐 신으면 달기는 사람으로 환생하고 신발주인은 죽게 된다고 한다.

그래서 왕겨를 태워 연기를 내면 연기 때문에 달기귀신이 못들어 오고 다른 곳으로 가버린다고 한다. 설날 꼬꼬할미나 달기귀신의 이야기를 어른들이 어린이에게 해주는 것은 섣달 그믐에 일찍 자면 눈섭이 센다 하여 밤늦게까지 잠을 안잤으므로 아이들을 일찍 재우기위해 들려준 것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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