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주사에 대형 주물공장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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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주사에 대형 주물공장 있었다
  • 박진수 기자
  • 승인 2023.06.15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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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리산 법주사는 누가 말하지 않아도 문화유산의 보고입니다. 법주사에만 국보 3점, 보물 13점 지방유형문화재 9점등을 보유하고 있다. 이 많은 문화재중 법주사 금강문을 지나 우측으로 바라보면 보호각안에 보물 1413호 지정된 철확이 자리하고 있다.
큰 사발(大鉢)의 형상을 한 법주사 철확은 높이 1.2m, 지름 2.7m, 둘레 10.8m, 두께 10∼13cm의 거대한 크기로, 기벽(器壁)의 두께는 3∼5cm 정도이며 무게는 약 20여톤으로 추정된다. 
비교적 단순한 구조에 몸체에는 아무런 문양이나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 제조연대·제작자 및 제조 방법 등을 알 수 없지만 용해온도가 청동보다 훨씬 높은 주철로 주조된 대형의 주물솥이라는 점에서 기술사적 측면으로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2010년 발간한 한국문화재보존학회 보존과학회지에 따르면 경도값 217Hv~698Hv라고 범위값으로 추정하건데 고대 철제유물이라 밝히고 있다, 시대로 보면 통일신라시대의 유물로 추정해도 과장이 아니다. 또 이 학회는 법주사 철확은 주조기술로 제작되었으며 가열과 냉각의 반복되는 탈탄작용이 보인다고 발표했다. 
불로 가열해 사용한 흔적이 있다는 점에서 법주사 철확은 또 하나의 숙제를 던지고 있습니다. 과연 밥을 하는 솥이었을까? 물이나 국을 끊이는 국솥이었을까? 두 가지 다 사용할 수 있는 기능이 과연 가능했을까? 가열한 흔적, 탈탄현상이 나타났다는 점에서 사용을 했을 것으로 추정되고는 있지만 어떤 용도였을까. 
20여톤, 두께 10~13cm의 그릇을 불을 피워 가열하는데 가열되는 시간과 이 무쇠가 가열됐을때를 상상해 보았다, 철확안에 있는 내용물이 어떻게 될까요, 또 덮개가 없다는 점과 가열되는 열에 과연 내용물이 견뎌낼 수 있을까요. 추정하건데 실용성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
그럼 과연 어떤 용도로 만들었을까? 궁금증의 시작이다. 
더욱 의문이 남는 것은 통일신라시대 주조기술로 만들었다고 학회주장을 유추해 만드는 과정을 상상해 보았다. 주조기술로 만든 만큼 지표가 아닌 땅속에 거푸집을 만들고 20여톤에 가까운 쇳물을 녹여 수십개의 구멍으로 흘려 보내는 주조시설을 상상해 보았다. 
이는 전통기술로 범종을 만드는 과정과 다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청동이 아닌 주철이라는 재료가 다를 뿐이다. 
그 시설은 자못 엄청난 크기의 용광로 기능을 하는 도가니를 연상되지만 고대국가 당시에 그것도 경주나 한양이 아닌 산속 깊은 속리산 법주사에 철을 녹이고 주조시설이 있다는 사실은 경이로울 따름이다. 분명 어떤 규모인지는 모르지만 지금의 주물공장을 연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동안 법주사 철확은 법주사의 규모를 자랑한 옛 스님들의 이야기에만 멈춰 있다. “예전 법주사의 스님과 해인사의 스님이 서로 절 크기를 자랑하다. 해인사의 스님이 해인사에는 큰 해우소(화장실)가 있는데 한번 볼일을 보면 떨어지는 소리가 3일후에 들린다고 자랑하자 법주사의 스님은 법주사에는 커다란 국솥이 있는데 국이 끓기 시작하면 배를 띄어 떠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한마디로 전설따라 삼천리와 같은 이야기이다.
그동안 법주사의 사세로만 이야기하던 법주사 철확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가 필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특히 법주사 철확을 만드는 주물공장의 유무에 대해 깊이 있는 연구를 통해 소중한 우리의 문화유산을 눈으로 보이는 해설만이 아닌 보다 현실적이고 가치 있는 유물로 평가되어 우리 문화유산의 소중함을 넘어 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문화자원이 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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