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요롭고 단란한 삶을 사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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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요롭고 단란한 삶을 사는 사람들
  • 보은신문
  • 승인 1991.01.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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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관준·박삼례 노부부 안경호씨 4대가족을 찾아서
66년을 같이 살아온 노부부 맑은 계곡물 넘쳐 흐르고 솔바람 청아한 곳 안돌이(외속 서원리)쌓인 흰 눈은 정보인 소나무의 푸르름을 더해주고 그 소나무의 푸르름만큼이나 살갑게 서로를 다독거리는 노부부의 부부애는 젊은 신혼 못지않다. 지난 90년 5월 결혼 66주년을 맞아 조촐한 동네잔치를 벌인 서관준(87)·박삼례(80) 노부부는 66년이란 긴 세월을 하루같이 한결같은 일상을 엮어오며, 주일이면 나란히 교회에 나가 지금까지 함께 한 생활에 감사드리고 죽어서도 함께 하기 기원하는 자세에서 노후 생활의 즐거움을 얻고 있다.

박삼례 할머니가 처음 이곳에 시집을 온 것은 14살의 어린나이. 영동군 황금면 추풍이 고향인 박할머니는 같은 동네에 사는 한 아주머니가 안돌이의 복수동이란 절에서 지성을 드려 아들 둘을 얻고, 이 동네의 착실한 총각을 동네 처자인 박할머니께 중매를 선 것이 산좋고 물좋아 신선이 산다는 동네 안돌이에서 노부부가 일생을 함께 하게된 계기가 되었던 것. 시집와 처음 본 신랑이 그저 낮설었지만, 나이가 어려 각방에서 산 4년동안 층층시하에서도 가끔씩 따듯한 눈빛을 보내오는 신랑에게서 믿음과 안도감을 느낄수 있었다고.

또한 아직 나이 어린 신부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소녀티를 벗어가는 각시가 그렇게 이쁠수가 없었다고 회고하는 서관준 할아버지는 "시부모에게 지극정성을 다하고 9남매(3남6녀)나 되는 아이들을 모두 건강하게 키워준 할머니가 고맙다"며 제각기 다복한 생활을 꾸려나가는 자식들도 대견스럽고 26명이나 되는 손주손녀들을 보노라면 어느 부모 부럽지 않다고 자랑이 대단하다. "생활하는데 있어 생기는 문제는 언제나 서로 의논해서 해결점을 찾는 것이 원만한 부부생활을 이끌어 가는 지혜"라며 젊은 부부들에게 당부하는 이들 노부부는 자제들에게도 항상 "남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서로 아껴가며 이해하고 살아가라"고 강조한단다.

이들 노부부의 남은 소원은 단 한가지. 그저 죽는 날까지 몸에 병없이 살다가 함께 죽어 묻히는 것 다복하고 건강하게 오랫동안 함께 살아온 이들 부부는 온갖 축복을 누리며 세상을 살았다는 고마움에 조금이나마 베풀며 사는 삶에 열중한다. 안돌이외 '정부인 소나무'를 관리하고 경로당 등 도움을 줄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찾아가 작으나마 도움을 주며,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큰 기쁨이라고, 또한 치안질서 유지에 기여한 공로로 도지사 표창까지 받기도 한 이들 노부부는 지역사회문제해결에도 솔선수범하고 안돌이를 대대로 지키며 살아가는 작은 역사의 한 인물임을 자부한다.

요즈음 현재 한전보은지점에서 근무하는 큰아들이 방학을 맞아 손주들을 데리고 들어와 부쩍 활기띤 집안 쇠여물 푸는 것을 거드는 손주가 마냥 대견스럽고, 동구밖 산모퉁이를 휘돌아 가는 매서운 겨울바람이 그저 춥게만 느껴지지는 않는다. 이들 노부부는 활기차고 귀여운 손주녀석들과 대견스럽게 장성해준 자식들의 훈훈한 웃음속에서 아사한 봄향기를 맡을 수 있기 때문이다.

4대가 함께 모여사는 가정 핵가족시대를 살고있는 현대인들 가족공동체의 삶보다는 가족개체 나름대로의 삶을 설계하고 개개인의 인생목적만을 추구해가는 사회풍토. 더구나 너나없이 한 자녀만을 가져 앞으로는 형제, 사촌이란 단어까지도 없어질 것이라는 위기감마저 드는 요즈음 지난 90년 5월 전통고수 가정이라 하여 도지사 표창을 받은 바 있는 4대가 함께 모여산다는 안경호씨(82) 댁을 찾았다. 마을 뒤쪽으로 낮은 야산이 병풍처럼 둘러 싸인 순홍 안씨일가가 집성촌을 이루고 사는 산외면 이식리.

4대가 함께 오손도손 정을 나누며 사는 안경호씨댁의 굴뚝에 피어 오르는 저녁연기가 정겹다. 가족들이 모두 둘러앉은 저녁 식탁에는 반찬보다는 화제가 더욱 풍성하다. 잔칫집에 갔던 일이며, 학교에서 일어났던 일, 어느 집안의 대소사, 국민학교 입학을 앞둔 증손주의 친구 이야기까지 저녁 밥상머리에 펼쳐놓은 이야기보따리는 끝이 없고 며느리, 손주며느리, 증손주를 둘러보는 안경호(82) 이차업(81) 노부부는 살아가는 생활이 즐겁고 감사하기만 하다.

가끔씩 TV에서 도회지의 버림 받고 갈곳없는 노인들을 보며 이험한 세상을 한탄하며 눈물을 찍어 내다가도, 국민학교 교사로 30여년을 발령지를 따라 떠돌아 다니면서도 먼길을 통학하며 집을 떠나지 않고 있는 큰아들, 게다가 지극정성을 다해 공양하는 큰 며느리가 그저 고맙고 미안할 따름이다. 더구나 젊은이란 젊은이는 모두들 농촌을 버리고 도시로 떠나가는 세상에 3남2녀 중 장남인 손자 안의상(36. 3대)까지 고향을 지키고 전통가정을 고수하며 사는 의지가 대견스럽고, 귀여운 증손주까지 안겨다 준 손주 며느리 조보희(30)씨가 마냥 사랑스럽다.

'어떠한 부모라 할지라도 내 부모는 하늘같이 모셔야 한다'는 말을 누누히 강조하는 4남1녀중의 장남 안승함씨(2대. 아곡국교 교사)는 이젠 현대사회의 직업을 쫓아 제각기 흩어져 살고 있는 형제와 자식들에게 비록 지금은 고향을 떠나 있어도 그 근본 뿌리는 잊지 않고 살아가도록 선산과 성묘를 찾아가 차례와 제례를 올리는 가족들의 모습을 비디오로 촬영, 모두 나누어 보며 자녀 교육에 힘쓸 것을 항상 당부하고 있다고. 위로는 시부모를 모시고 아래로는 며느리를 거느리고 살면서도 고부간에 말다툼 한번 해본적이 없어 인근에서 칭찬이 자자한 2대 며느리 최순무씨(57)는 지난 84년 산외노인회로부터 효행상을 받기도 했다.

가족들을 원만하고 화목하게 이끄는 비결을 "가족 모두가 가정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스스로 맡아 하고, 문제점은 서로 모여서 함께 의논하며, 대화의 시간을 자주 갖는 것"이라고 귀뜸하는 안경호씨 집안의 자랑은 한두가지가 아니다. 1대인 안경호할아버지는 삼을 이용해서 6날 미투리를 만들어 대한노인회가 주최한 솜씨자랑대회에서 여러번 입상하기도 했고, 가족들이 모두 수석과 꽃을 울안에서 키우고 가꿔 찾아오는 친구들이나 손님들에게 선물하기를 즐겨한다.

출타하거나 집에 돌아왔을 때마다 큰 절을 올리고 있다는 안씨가족들은 고루하다고 치부해 버리기엔 너무도 다복하고 활기띤 삶을 살아가고 있다. 대청 마루위에 걸어놓은 '가전충효(家電忠孝)'란 가훈의 글자 하나하나가 가슴에 와닿으며, 대문밖까지 나와 배웅하는 4대 윤경(8), 효주(5)군의 낭랑한 인사말이 돌아나오는 기자의 발걸음을 가볍게 한다. 한번쯤 부모를, 형제를, 가족을, 이웃을…… 그 모두를 다시 생각게 하는 계기를 그들은 마련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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