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은의 동학농민혁명으로 정체성을 찾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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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은의 동학농민혁명으로 정체성을 찾자
  • 박진수 기자
  • 승인 2023.04.13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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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의 헌법 전문에는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중략)”라는 내용은 1919년 3.1운동의 정신과 4.19 민주화 운동에 대한 근본적인 정신을 강조하고 있다.
한국 역사에 구한만 조선의 역사는 국권침탈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급기야 일제강점기를 맞이하면서 나라가 혼란하고 나라를 빼앗겼어도 되찾고자 하는 정신은 한민족 스스로의 자긍심과 의지의 발로였다.
이것은 대한민국 국민 스스로가 현재 민주주의 국가라는 초석을 만들어낸 힘의 원천이었다.
임시정부를 주도했던 백범 김구 선생은 18세부터 동학에 입도하여 사람이 하늘이라는 인내천(人乃天) 정신을 실천했으며 백성, 국민으로부터 모든 주권을 가지고 있음을 누구보다도 강조하고 몸으로 실천한 분이다.
조선 백성의 아픔과 고통의 시작은 외세로부터의 간섭과 무기력해가는 왕권에 보국안민(輔國安民)의 기치를 내걸었던 동학도들의 보은집회는 한반도 최초의 민의 장이 펼쳐졌던 곳이 보은이라는 점이다.
이번 임시정부 및 대한민국은 3,1 운동과 4.19 정신을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100년의 역사 이전에 동학농민혁명의 정신인 ‘사람이 하늘이다’ 라는 인내천 정신이 이어져 임시정부의 역사가 시작됨을 어느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대한민국의 역사는 단절된 것이 아니라 백성, 국민으로부터 그 생명력을 이어온 유구한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다행히 지난해 동학농민혁명이 특별법으로 제정된 이후 국가기념일이 잠정 결정되어 국무회의만 남겨놓은 상태다. 
1919년 4월 11일에 공포된 상해임시정부의 헌법을 토대로 지금의 대한민국의 헌법 전문으로 이어오듯 1919년 상해 임시정부의 헌법은 동학농민혁명의 기조속에서 그 토대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구한말 세계 열강의 식민지를 위한 조선의 위기속에서 조선 백성들에게 희망과 등불이었던 동학정신은 새로운 세상, 백성이 주인되는 지금의 민주주의를 꿈꾸며 보국안민, 척외양창의(斥倭洋倡義)를 외쳤을 것이다.
보은 땅에 지금으로부터 126년 전 1893년 3월 10일의 역사는 분명 조선, 한반도의 새역사를 만들고자 했던 민초들의 전율, 전사적(前史) 성격을 지니고 있다. 또 동학농민혁명이 본격화된 갑오년 1894년 12월 17일에 있었던 북실전투의 역사적 의미는 동학지도부의 마지막 전투였다는 점에서 그 역사성 역시 잊어서는 안될 계승, 발전시켜야 할 보은의 정신인 것이다.
대한민국의 존립에 있어 3.1 운동의 토대 역시 1893년 3월 전국 8도의 동학도와 백성이 한자리에 모였던 보은집회의 역사 역시 간과해서는 안되는 보은의 역사이며 대한민국의 역사로 평가되어야 한다.
나라를 빼앗겨도 상해 임시정부 헌법의 10개조의 내용과 동학농민군이 주장했던 폐정개혁안 12개조의 내용 모두 백성, 국민의 안위로부터 시작된다.
한반도의 역사속에서 신분제도의 모순을 타파하고 백성이 주인임을 주장했던 동학농민혁명의 역사속에서 보은의 동학농민혁명의 역사는 주목을 넘어 영원히 지켜야할 중요한 역사라는 사실이다. 
오는 14일과 15일에는 130주년 보은취회 기념식이 장안마을에서 열리고 129주기 보은동학농민군 위령제가 북실마을 보은동학농민혁명기념공원에서 개최된다. 이 땅에 살고 있는 주민이라면 행사장을 찾아 보은의 역사를 되새겨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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