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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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길
  • 이장열 (사)한국전통문화진흥원 이사장
  • 승인 2023.04.06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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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이 왔다. 고향 가는 길이다. 대구에서 80리 신작로길, 활짝 핀 벚꽃의 조명이 온 하늘에 가득하다. 와! 생의 환희에 들뜬 합창 교향곡이 하늘 가득 울려 퍼진다.
 내 고향동네는 4백수십 년 전 조선시대에 청자와 분청사기를 굽던 도요지로 번성하던 곳이었다. 그런데 임진왜란 때 들이닥친 왜군들이 동네 도공들을 모두 잡아서 일본으로 끌고 간 후 동네는 폐허가 되었지만 일본은 그들의 기술로 문예부흥을 이루었다. 동네에 다시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상당한 세월이 지난 후였다.
 하늘색마저 하얗게 맑고 밝은 오늘의 고향행은 봄나들이가 아니다. 가까운 형님 한분의 유해가 환향하는 날이다. 고향으로 달리는 길은 옛 “신작로”다. 이 길은 일제가 새로 만든 넓고 곧은 길, 말 그대로 ‘신작로’다. 이 길이 생긴 후 시골에서도 5일장 가는 길이 한결 편리해졌다. 소달구지 길에서 “육발이 제무시”와 버스길이 되었다. 오늘까지 변한 것은 조금 넓혀진 길섶, 자욱하게 먼지 일던 길이 아스팔트로 바뀌었을 뿐이다. 신작로 양편에 있던 “양버들”(포플러)은 꺾어서 아무 땅에나 심어도 잘 자랐다.
 책가방을 대각선으로 어깨에 메고 걷고 뛰며 다닌 포플러 10리길이었다. 그 길이 이제는 화려한 벚꽃길이 되었다. 낙동강다리도 지나 한동안 달린 끝에 드디어 고향동네 청륭에 도착했다. 옛 느티나무 옆에 있는 산발치에 모셔져 있는 조상들의 산소에 참배를 했다. 상석 주변에는 희귀한 할미꽃과 하얀 민들래가 군데군데 피어있었다.
 조카들을 기다리는 시간에 “주막”으로 나가서 옛날에 살던 집터를 찾았다. 봄볕에 앉아서 나물을 다듬는 나이 듬직한 한 아주머니에게 물어보았다. “몰라요” 하고 이방인인 그가 이방인이 된 나를 힐끗 보며 말했다. “이쯤일까?”하고 살피던 중 외갓집 터에 늙은 납작감나무 하나가 햇볕에 탄 시꺼먼 노인의 몰골로 서 있었다. 옆집 선오네의 개울쪽 축대도 옛 모습 그대로였다. 만돌네 집 밑에 공굴은 6.25전쟁을 겪으면서도 그대로 있었다. 그 안에서 만돌이가 보리밥알을 미끼로 퐁당퐁당 붕어를 낚던 듬벙 밑 실개울 오염수 위에는 소금쟁이 몇 마리가 기어 다니고 있었다.
 드디어 전화연락을 받고 청륭으로 가서 조카과 안동네를 거쳐 선산으로 올라갔다. 할아버지, 아버지, 큰어머님이 별세하셨을 때도 올랐던 산길 옆에는 주홍색 진달래들이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진달래 사이에서 숨은 공비들이 뛰어내려올 것 같은 소름끼치는 착각도 들었다. 형님의 유골은 아버지 산소 바로 밑에 매장했다. 흔히들 유골가루를 바람에 날리거나 바닷물에 뿌리는 행위는 산자들의 극적효과는 있겠으나 공기와 수질오염, 그리고 시행자의 건강에도 해롭고 의미 없는 일이라, 아버지 산소 밑에 매장하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 졌다. 사람의 한평생이 긴 것 같지만 1년생 풀과 다를 바 없음을 느낀다.
 까부는 저 벌 나비들도 한철뿐이고, 10년 세월이 긴 것 같지만 일년 농사 10번이면 그것이 10년이라. 늙은 농부들이 앞으로 몇 번 더 농사를 지어먹고 가게 될지 모르지만 뒤따라 늙어오는 젊은이들의 재촉에 쫓겨 가는 늙은이의 세월이 너무 빠르구나!  그 어느 날 세상 속에 뚝 떨어져 살면서 밥을 먹고 살아왔고 앞으로도 밥을 먹으며 살겠지.
 사람이 사는 목적이 무언가? “죽어서도 영생을 목적으로 누구를 믿고 섬기며 열심히 기도하고 살았다”고? 그건 개인의 이기주의지. 그 영생해서 뭘 하겠단 말인데? 하지만 적어도 개인 욕심을 위해서 거짓말과 사기, 도둑질, 강도, 살인 등 온갖 나쁜 짓만 하고 살아온 양심도 없는 “짐승”이라는 소리를 듣지는 말아야지. 그런 자들이야말로 밥만 축내는 짐승들이지. 하지만 내가 죽은 후 가족 빼고 몇 사람이나 내 죽음을 애타게 생각할까? 그리고 “너는 사는 동안 인류를 위해 무슨 일을 했나?”하고 물을 때 무덤 속에 누워서 과연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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