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 영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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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 영토
  • 양승윤 (회남면 산수리)
  • 승인 2023.02.16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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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춘이 지났다. 입춘은 봄으로 가는 네 절기의 시작이다. 머지않아 우수, 경칩, 그리고 춘분으로 이어진다. 봄에 일찍 피는 꽃을 찾아봤다. 동백꽃이라는 응답 끝에 동백은 봄꽃이라기보다는 겨울에도 피는 꽃이라고 했다. 매화나 산수유 같은 꽃이 일찍 피는 봄꽃으로 나왔다. 어떤 플로리스트는 봄에 제일 먼저 피는 꽃을 ‘누구나 다 아는 것처럼’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복수초라고 했다. 민들레다. 지역별로 피는 시기가 조금씩 다르지만, 우리나라 전역에서 제일 먼저 피는 노랑꽃이 아닐까 한다고 했다. 혹시나 해서 아직 추운 뜰 안을 여기저기 살펴봤다. 포도 넝쿨을 잘라낸 자리, 찬 바람 덜 타는 양지쪽에 노랑꽃 조그만 얼굴을 내민 게 보인다.
   민들레는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이다. 앉은뱅이 꽃 또는 지정(地丁)이라고 한다. 같이 앉은뱅이로 불리는 꽃으로 제비꽃과 채송화가 있는데, 어디에나 민들레가 끝 순서다. 그런데도 겨울에 죽었다가 이듬해 다시 살아나는 강인한 생명력을 지녔다. 시멘트 포장한 길가에도 틈만 있으면 뿌리를 내리고 자란다. 동네 사람들이 늘 밟고 다니는 길가에도 있다. 언젠가 대문 주변을 정리할 요량으로 민들레를 뽑아보려고 했지만, 잎과 줄기만 떨어졌다. 호미를 찾아다가 뿌리를 캐봤다. 그 단단한 땅에 정말 깊게 뿌리가 박혀 있었다. 한 자리에 곧고 깊게 뿌리를 내려 옮겨갈 수 없는 민들레의 당찬 모습에 ‘일편단심 민들레’라는 노래가 생겨난 게 아닐까.  
   민들레는 잎을 위시해서 꽃도 줄기도 뿌리까지 모두 먹을 수 있다. 나물로 무치거나 된장을 풀어 국으로 끓이거나 튀김을 해도 좋다고 한다. 며칠 전 한 TV가 전하기를 외진 산사의 노스님 한 분이 이번 한파에 민들레를 캐서 샐러드로 먹었더니 쌉쓰레한 맛이 잃었던 입맛을 되찾아 주더라고 했다. 유럽에서는 야채로 민들레를 많이 먹는다. 프랑스의 고급요리 리스트에 민들레 샐러드가 등장하고 있다. 놀랍게도 오래전부터 민들레 커피(dandelion coffee)의 인기가 좋다는 것이다. 민들레 뿌리를 말려 가루를 내서 뜨거운 물을 내려 마시는 것인데, 맛과 빛깔과 향기가 커피와 비슷하다고 한다. 커피처럼 자극적이지 않고, 카페인이 전무하며, 중독성이 없고, 몸에도 유익하다는 것이다. 위염을 다스리고, 항암작용을 하며, 간을 보호하고, 머리카락을 검게 하며, 산모의 젓이 잘 나오게 하는데 큰 효과가 있다고 한다.  
   민들레는 순수한 우리말이다. 옛날에는 미염둘레로 또는 문들레로 불렀다. 문만 나서면 지천으로 피어있다고 해서 나온 말이란다. 복수초(福壽草)는 일본식 한자 이름이고, 한방에서는 포공영(蒲公英)으로 쓰는데 꽃이 피기 전에 따서 말린 것을 약재로 쓴다. 이밖에도 민들레를 지칭하는 이명들이 많다. 금잠초(金簪草)라고 해서 ‘비녀’ 잠(簪)자를 쓰는 이름도 있고, 만지금(滿地金)도 있다. 봄이 되면 온 천지를 금빛으로 물들인다고 해서 생긴 이름이다. 쓰다고 해서 고채(苦菜), 꽃대를 잘라 보면 흰 즙이 나온다고 해서 개젖풀 구유초(狗乳草), 바람에 홀씨가 날리는 모습이 머리카락이 하얗게 센 노인과 같다고 해서 ‘파파정’으로도 불린다. 또 있다. 옛날 서당 주변에 민들레를 가득 심어 가꾸면서 서생들에게 민들레의 아홉 가지 덕을 가르쳤다고 한다. 민들레가 구덕초(九德草)라는 훈훈한 이름을 가지게 된 연유다. 인내심(忍), 강인함, 예의, 유용함, 정(情), 자애로움, 효심, 어짊, 개척의 용기(勇)를 상징한다는 것이다. 서양에서는 어떨까. 프랑스어로 민들레를 ‘사자의 이빨’이라고 하는데, 영어 명칭 단델라이언(dandelion)을 ‘dent-de-lion’으로 풀어써서 생긴 표현이다. 연인들 사이에서 민들레 홀씨를 모두 한숨에 날려 버리면 바라던 소망이 이루어질 것이고, 몇 개가 남아 있다면 그 숫자만큼 아이를 가지게 될지를 가리킨다고 한다. 아이들에게는 한숨에 홀씨를 모두 날리게 되면, 새 옷이 생긴다는 속설이 있어서 민들레 홀씨만 보면 열심히 불고 다닌다.
   민들레 시(詩)가 많다. 이해인 님의 ‘민들레 영토’가 가장 먼저 눈에 띈다. 태초부터 나의 영토는/ 좁은 길이었다 해도/ 고독의 진주를 캐며/ 내가/ 꽃으로 피어나야 할 땅. 김인구 시인은 ‘바닥꽃’에서 모두들 떠나보내고 난 뒤에야/ 앉은 자리에서 싹을 내민다./ 모든 걸 놓아버리고 난 뒤에야/ 슬그머니 손을 내민다./고 했다. 민들레가 우리에게 안분지족(安分知足)을 가르치는 것 같다. ‘편안한 마음으로 제 분수를 지키며 만족함을 앎’으로 풀이해 본다. 민들레의 봄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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