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지섣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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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섣달
  • 보은신문
  • 승인 2022.12.22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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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1>

 ‘동지(冬至)섣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버혀 내여,/ 춘풍(春風) 니불 아레 서리서리 너헛다가,/ 오론님 오신 날 밤이여든 구뷔구뷔 펴리라.’
 조선시대 개성명기 황진이의 ‘동짓달 기나긴 밤을’이란 시조다.

 현대어로 풀이하면 다음과 같다.
 ‘동짓달 긴긴 밤의 한가운데를 베어내어/ 봄바람처럼 따뜻한 이불 아래에 서리서리 넣어 두었다가/ 정든 임이 오신 밤이면 굽이굽이 펼쳐내어 그 밤이 더디 새게 이으리라.’

 황진이는 화담 서경덕을 연모하여 문하로 들어가 제자가 됐다. 벽계수, 소세양, 지족선사 등 당대 내로라하는 뭇 남성들을 품어봤지만 마뜩하지 않았다. 다만 화담만큼은 인생의 스승이자 진정으로 흠모한 사내로 여겼다.

 그런 그가 없는 동짓달 긴 밤 동안 그를 그리며 한숨으로 지새우는 여인의 심경을 서정적으로 잘 표현했다. 밤의 한가운데를 ‘허리’라고 상징한 뒤, 그것을 베어낸다고 한 것은 아마 황진이만이 표현할 수 있는 시상일 것이라고들 한다.

 즉, 임이 없는 동짓달의 긴 밤을 잘라 내어 잘 서려 넣어 두었다가 임이 오신 밤에 굽이굽이 펴서 날이 새지 않게 해 놓고 그 동안 쌓인 회포를 밤새도록 풀어 보겠다는 뜻 아니겠는가. 누구에게나 한 번쯤 있음직한 가슴 두근거리던 젊은 날의 그 때처럼 말이다.
  
 각설하고, 동짓달은 음력으로 11월을 이른다. 섣달은 음력으로 마지막 달인 12월을 말한다. 따라서 ‘동지섣달’이라고 하면 음력으로 11월인 동짓달과 12월인 섣달을 같이 부를 때의 표현이다. 양력으론 12월과 1월에 해당한다. 연중 가장 추운 때이고 밤은 매우 길다.

 그래서 ‘동지섣달에는 닭서리다’라는 세시풍속이 전해온다. 서리는 옛 농촌 풍속의 하나로 떼를 지어 남의 채소, 과일, 가축을 훔쳐 먹는 일종의 장난을 말한다. 재미삼아 하는 장난이기에 도둑질과 달리 주인에게 큰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이루어졌다.

 한국민속대백과사전을 보면 닭서리는 주로 나이가 든 장년층에서 행해졌다. 동지섣달 긴긴밤에 사랑방에 모여 새끼를 꼬거나 화투를 치다가 자정 넘어 속이 출출해지면 서리에 나섰다. 닭장 허술하고 설사 들킨다하더라도 이해해 줄 만한 농가를 택했다.

 대부분 닭들은 횃대에 나란히 올라앉아 서로 몸을 의지해 잠을 잔다. 닭은 밤눈이 어둡다. 옆의 닭이 잡혀가든 말든 나 몰라라 하는 습성도 있다. 따라서 머리를 잽싸게 날갯죽지에 휙 비틀어 쑤셔 넣어 단 한 번에 숨이 막혀 울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오늘은 밤이 가장 길다는 ‘동지’다. 새알심 넣은 팥죽을 이웃과 나누어 먹던 풍속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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