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설이 만건곤(滿乾坤)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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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설이 만건곤(滿乾坤)하니…
  • 보은신문
  • 승인 2003.02.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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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인(보은 장신)
새해가 밝은지 벌써 한 달이 가까워지고 있다. 절기로 따지자면 소한과 대한이 다 지났으니 이번 겨울도 이제 막바지에 이른 것 같다. 지난 소한 때는 정말 지독히도 추웠고 눈도 많이 내렸다.
워낙 심했던 소한 추위를 겪은 탓인지 대한 추위는 훨씬 수월하게 지나간 것 같다. 하지만 겨울은 역시 겨울인지라 제 자리를 쉽게 내어 주지 않는다.

어제(1월27일) 다시 눈이 많이 내리더니 내일 아침엔 기온이 뚝 떨어질 전망이란다. 저녁 무렵에 시냇가를 따라 산책을 나섰다.
사람들이 다니지 않은 외떨어진 둑 위를, 그것도 눈이 수북히 쌓인 둑 위를 저녁 시간에 걷는 것이 다소 쓸쓸하게 보일는지 몰라도 정작 그 길을 걷는 사람은 고즈넉한 넉넉함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을 누가 알 수 있을 것인가.

매서운 겨울 바람에 많이 찢겨진 채 성긋성긋한 머리 위에 눈을 이고 있는 제방의 철 지난 억새꽃 또한 시간과 시련 그리고 소멸이라는 자연의 법칙을 말없이 전해 주고 있지 않는가. 이렇듯 모든 존재하는 것들을 고요한 시선 앞에서는 저들이 간직하고 있는 소중한 의미를 드러내 준다. 길이 미끄럽고 추운 때에는 사람들은 활동을 자제한다.

겨울잠을 자는 동물들의 긴 동면이 생명을 연장하고 키워 가기 위한 자연의 한 법칙이라면 겨울에 사람들의 집 밖에서의 활동이 줄어드는 것 또한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이성적 동물인지라 그저 잠만 자고 있지 않다. 오히려 외부 활동이 줄어드는 대신 보다 왕성한 내부 활동을 모색한다.

그러한 활동 중의 하나가 바로 독서일 것이다. 겨울철에 책이 더 많이 팔린다는 사실이 바로 이를 입증한다. 창문 밖에는 흰 눈이 가득한데 특별히 할 일도 없다보니 자연스럽게 책장을 뒤지다가 빛 바랜 책 한 권을 잡게 된다. 책명은 채근담 구입한 날짜는 1984년 3월. 이 책을 구입할 때만해도 삼십 초반이었는데 벌써 오십 고개를 넘었다.

눈에 다음과 같은 글귀가 들어온다. “간(肝)이 병들면 눈이 잘 보이지 않고 신장이 병이 들면 귀가 잘 들리지 않는다. 병은 사람이 보지 못하는 데서 생겨 반드시 사람이 모두 보는 곳에 그 증상이 나타난다. 그러므로 군자는 사람이 밝게 보는 곳에서 죄를 얻지 않으려면 먼저 사람이 보지 못하는 곳에서 죄를 얻지 말라” 간단히 말해서 양심을 속이지 말라는 가르침이다.

이제 얼마후면 새 정부가 들어선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는 국민을 위해 봉사할 훌륭한 공직자를 뽑기 위해 다면 평가를 적용하고 5단계 검증을 거친다고 한다. 하지만 아무리 철저한 제도를 도입한다 해도 양심의 검증만큼 정확한 검증은 없을 것이다. 문제는 증거를 제시할 수 없는 양심의 검증을 어떻게 확보할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대답은 간단하다.

그것은 나부터 먼저 양심을 지키는 것이다. 모든 공직자와 정당하지 못한 이권과 특혜 앞에서 ‘백설이 만건곤할 제 독야청청 하리라’의 정신을 가꾸어 간다면 우리 모두가 함께 만들고 함께 기대하는 새로운 대한민국은 가능할 것이다. ‘국민이 대통령입니다’라는 구호를 내건 새로운 대통령을 뽑은 이번 겨울에 눈이 많이 내려서 문자 그대로 백설이 만건곤한 경치를 자주 접할 수 있다는 것은 인간의 영원한 스승인 자연이 결코 작지 않은 그 무엇인가를 지금의 우리 모두에게 시사하는 것은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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