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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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표  
  • 김종례(문학가)
  • 승인 2022.11.24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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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계절이 바뀔 때마다 하늘과 대지와 나무들은 한 번씩 요동을 치나보다. 바람은 붉디붉은 계절의 흔적들을 다 내려놓으라고 재촉하고, 호수는 수위를 높여가며 그런 바람에게 파문으로 응답한다. 창문에 걸려있는 시래기처럼 삶의 옹이들은 자꾸만 엮여져가고, 사람들도 자연의 장단에 맞추느라 동분서주하는 요즘이다. 다시는 돌아가지 못할 계절의 강물위로 진눈깨비라도 추적추적 내릴 것 같은 11월! 푸르고 충만했던 지난날을 회고하며 그저 침묵을 해야 하는 달인가 보다. 나도 시도때도 없이 정적을 깨부수는 카톡 세상에서 벗어나 안한자적하려 했으나, 한참을 안 보던 단톡들이 다시 궁금해져서 한꺼번에 뒤적거리는 습관이 생겨났나 보다. 
  오늘은 초등지기 단톡방에 올려진 한 장의 빛바랜 흑백사진에 눈길이 박힌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날 한 줄로 늘어선 코흘리개들 가슴마다 무명 순수건이랑 매달린 명찰이다. 상급학교로 진급할 때마다 크기가 조금씩 작아지며 늘 가슴에 붙어 다니던 내 이름표 석자! 하루하루가 그저 당당하기만 했던 학창시절의 이름표들을 마주하며, 내 삶의 현주소를 자문해 보는 순간이다. 근래에 내 사고력과 편견의 곤두박질을 부추긴 것도 바로 신주대감처럼 모시고 다니던 명함 때문이 아닌가. 퇴직과 동시에 무용지물이 된 종이조각 한 묶음을 쓰레기통에 던지던 날의 심경을 떠올리며, 새삼 이런 글을 쓰게 되다니 아이러니할 뿐이다.    
 ‘똑같은 직위의 명함은 최대한 십년을 넘기는 경우가 드물다.’는 말이 있듯이, 명함이란 현 신분의 유효기간이 끝나는 동시에 한낱 쓰레기에 불과하다. 명함은 나름대로 사회적 신분의 이력서나 증명서일 뿐만 아니라 신용의 담보물이 되기도 하였다. 자신의 브랜드 가치를 대변해 주면서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신용카드로 착각하며 살았는지도 모른다. 또한 사람들은 아파트이름, 차종이름, 고가애견, 의복이나 장신구 따위로 자신을 포장하며 당당하게 살고자 애를 쓰는지도 모른다. 치장의 재질이나 포장지 무늬가 화려할수록 자신의 본질이 서서히 감춰지는 것을 자각하지 못한 채, 무감각하게 습관화된 편견과 오만 속에서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이 세상의 별이 되라고 부모님께서 지어주신 귀중한 이름을 퇴직과 동시에 바꾸는 사람도 보았다. 심지어 모든 겉치레들을 훌훌 벗어던진 목욕탕에서조차 문신 문화로 변신을 꾀하는 이도 있으니 어찌하랴 ~  아무리 아름다운 이름이라도 망측한 영혼에 따라붙으면 오명이 되지만, 못생긴 이름이라도 아름다운 영혼에 붙으면 한 송이 꽃이 되는데도 말이다. 
  그러기에 망자의 빈소 앞에 서는 날이면 생전에 그 사람의 얼굴이 떠오르며 만감이 교차하게 마련이다. 이름석자만 들어도 얼굴이 환하게 밝아지거나, 어두워지는 희비가 엇갈리는 이유는 또 왜일까? 그것은 이름석자 앞에 붙은 직함 때문이 아니라 내면에서 풍겨 나오는 본연의 빛깔, 바로 마음의 이름표 때문일 것이다. 한 사람의 영혼을 아름답게 장식하거나 때로는 고통스럽게 낙인을 찍게 만드는 마음의 이름표! 오로지 뇌리에 오랫동안 남아있는 것은 그 사람의 얼굴과 이름석자 뿐이니 그러하다. 그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특유한 내면의 빛깔이 채색되어 독특한 마음씨나 인성으로 발휘되기 때문이다. 오로지 자신의 이름표 석자만이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을 대변해 주는 보증수표이기 때문이다.
  촛불을 켜지 않아도, 향수를 뿌리지 않아도 그 사람만이 지니는 개성적인 향기를 물씬 풍기는 사람이야말로, 가장 값진 이름표를 달고 살아가는 것이리라. 나도 퇴직 후 한 동안은 이름석자 뒤에 따라붙는 직함으로 인하여 다소 위로를 받긴 하였지만, 내 본질이 사라지고 있음을 미처 깨닫지 못했나 보다. 지금부터라도 마음의 이름표의 빛깔을 아름답게 장식하고만 싶어진다. 겉치레 없이 홀가분하게 황혼의 자유를 누리면서 살고만 싶어진다. 
  사향노루는 자신의 코끝에서 풍기는 향기의 정체를 알고자 온 산을 누비고 돌아다니다가, 절벽에 떨어져 죽는 순간까지도 그 향기의 정체가 자신이라는 것을 모르고 비명횡사한다고 전해온다. 살짝 어리석게도 느껴지지만 순진무구한 사향노루의 멍청한 모습이 결코 추함은 아닐 것이기에, 잔잔한 미소와 연민이 생기는가 보다. 
‘삶이 계속되는 한 자신에 대한 기대감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 쇼펜하우어의 기대심리학을 스스로에게 적용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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