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기4355년 개천절에 부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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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4355년 개천절에 부쳐
  • 최동철
  • 승인 2022.10.06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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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 5대 국경일로 법정공휴일이었던 10월3일은 4355주년 개천절이었다. 개천절은 ‘하늘이 열린 날’이라는 의미다. 즉, 우리 민족의 시조 단군이 조선이라는 국호로 첫 국가를 세워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라’는 홍익인간 정신으로 세상을 다스렸음을 기념하는 날이다.

 이로써 단군의 건국 이래 4355년간 이어진 ‘반만년의 유구한 역사’는 우리 민족의 자랑이 되어왔다. 헌데 언제부터인가 달력에서 서기년도와 함께 늘 병기돼왔던 단기년도 표기가 사라져버렸다. 개천절 행사 역시 갈수록 축소되거나 특정 종교 행사로 전락하고 있다.

 일부 개신교 등이 개천절의 제천행사를 편향된 종교적 시각으로만 해석해 이의를 제기해왔다. 이는 개천절의 의미가 민족적 차원에서 본격적으로 다시 활성화 된 것은 1909년인데, 재건의 토대가 단군을 신앙의 대상으로 하는 ‘대종교’였기 때문일 것이다.

 1909년은 우리나라가 을사늑약으로 일제에 외교권을 박탈당하고, 탄압이 시작되던 시기였다. 일제에 저항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민중의 계몽과 민족 단합이 절실했다. 민족종교 ‘대종교’의 창시자이자 독립운동가인 나철은 ‘단군’을 내세웠다.

 음력 10월3일을 ‘개천절’이라 부르며 하늘에 제를 올리는 ‘제천’행사를 매년 열었다. 이 행사는 당시 독립운동가와 지식인, 해외동포들이 중심이 되어 각 지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됐다. 대종교가 중심이었지만 실상 종교적 색채만을 고집하지는 않았다.

 말미암아 10년 뒤, 3·1 운동이 전개됐고 이에 힘입은 김구 등 독립운동가들은 1919년4월13일 중국 상하이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설립했다. 그리고 일제의 압제에 맞서 민족의 단결력을 높이기 위해 삼일절과 개천절을 공식 국경일로 지정했다.

 이어 1945년 광복을 거쳐 1949년, 음력이던 개천절의 날짜를 양력 10월3일로 개정해 그 의미를 기념해 오고 있다. 개천절의 시작은 일제의 감시를 피해 민족이 회동하여 단합하고 저항의식을 고취시키기 위한 방편의 종교적 행사였으나 종국에는 순수한 국경일로 정해졌다.

 1530년 조선 성종 때 발간된 지리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평양 강동현 서쪽 3리에 둘레 410자의 큰 묘가 단군 묘라고 했다. 1993년 북한은 이를 근거로 평양시 강동군 대박산 기슭에 단군 능을 재건했다. 단군왕검의 유해도 발견됐고 모든 것이 5011년 전 것이라고 주장했다. 

 북한과 남한의 개천절은 똑 같이 10월 3일이다. 2002, 2003, 2005, 2014년 10월 3일 평양 단군묘 앞에서 남북한은 공동 단군제를 지냈다. 두 나라로 갈라져 으름장 놓지만 한민족이 단군의 자손이라는 데는 이의가 있을 수 없다. 

 어쨌든 개천절은 우리 민족의 생일이자 역사의 시작점인 날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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