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 타는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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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 타는 기쁨
  • 김옥란 
  • 승인 2022.09.08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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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전철이 현대적이라면 완행열차는 고전적이다. 기차는 현대적 감성과 고전적 감성을 다 느낄 수 있는 차(車)이다. 
이번에 나는 동생과 함께 서울을 다녀왔다. 평소에는 속리산에서 서울행 직통버스를 이용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올라갈 때와 내려올 때 기차를 이용했다. 참 오랜만에 타보는 기차였다. 상경할 때, 동생이 남편과 저녁 모임이 있다고 서두르기에 우리는 속리산에서 오송까지 가서 오송에서 고속전철을 이용하여 서울을 가게 되었다. 오송역에 도착하는 바로 그 순간 기차가 와주어서 얼른 탈 수 있었다. 서울에서 속리산으로 내려올 때는 강남고속버스터미널까지 갔으나 추석을 앞둔 시점의 금요일 아침이라 산소에 금초 가는 사람들로 붐볐다. 오전 버스표 사기가 쉽지 않을 듯했다. 동생과 나는 서울역으로 가서 옥천에서 내리는 <무궁화>호 기차를 타고 내려와야 했다. 모처럼 <무궁화>호 기차를 탔더니 어찌나 즐겁던지……. 먼 곳으로의 여행 같았다. 그러고 보니 40년 전에 친구와 <무궁화>호 기차를 타고 부산 해운대 여행을 갔었던 일이 떠오른다.
여고 2학년 시절의 어느 날, 학교 기숙사 친구와 나는 대전역으로 나가서 부산으로 가는 <대전발 0시 50분> 기차를 탔다. 우리가 탄 기차는 <무궁화>호 기차였다. 기차는 긴긴밤을 달려 새벽녘에 부산에 도착했다. 부산역에서 내린 우리는 해운대 바닷가로 달려갔다. 그곳에서 교복 입은 여학생인 우리는 끝없이 펼쳐진 바다를 무아지경으로 바라보았다. 포말로 부서지며 밀려왔다 밀려가는 파도와, 파도 소리와, 찬란하고 장엄한 해돋이를 구경했다. 친구와의 첫 여행은 그렇게 소박했다. 우리는 다시 <무궁화>호 기차를 타고 대전으로 달려와서 아무 일 없었던 듯 기숙사로 들어갔다.
그로부터 세월이 많이 지났다. <대전발 0시 50분> 기차를 타고 함께 해운대 여행을 갔던 그 친구는 지금 어디에서 무엇이 되어 살고 있을까! 문득 김광섭시인의 <저녁에>라는 시가 떠오른다. 긴 머리 곱게 땋았던 고운 그 친구도 나처럼 그때 일을 문득 떠올릴까? 다시 만난다면, 나는 그 친구와 그 시절 그때처럼 대전역에서 <대전발 0시 50분> 무궁화 기차를 타고 해운대 여행을 갔다 오고 싶다. 저마다의 인생 기차를 타고 지금껏 달려온 이야기를 해운대 바닷가에 앉아서 두런두런 나누다가 돌아올 것이다. 
기차, 기차는 나에게 삶을 잠시 관조할 수 있는 <달리는 쉼터>이다. 현대적인 기차이든 고전적인 기차이든 아무튼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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