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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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길
  • 최동철
  • 승인 2022.09.08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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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낼모레는 우리민족의 최대 명절 추석이다. 대체 휴일을 포함해 공휴일이 연속 나흘이나 된다. 특히 이번 추석은 코로나19의 ‘거리두기’ 방역수칙이 적용되지 않는다. 고속도로는 벌써 귀성, 민족대이동으로 인해 정체되고 있다는 소식이다.

 웬만하면 고향에 가서 조상께 예 갖추고, 부모와 일가친지에게 문안인사 드리며, 대보름 달맞이를 하고픈 게 인지상정이라 그럴 것이다. 그래서 박성훈의 열차야 버스야 달려가자…부모형제 기다리는 친구들이 기다리는… 작사곡 ‘고향 가는 길’을 듣자면 예전 시절이 회상된다.

 요즘이야 대부분 자가용으로 고향 길을 달리지만 60~70년대만 해도 거개가 대중교통을 이용해 귀성했다. 특히 암표상에게 웃돈을 주고 사거나, 며칠 전부터 밤샘 끝에 간신히 구한 귀성 버스, 기차표로 고향을 향했다.

 출발하는 버스터미널이나 기차역 주변은 인산인해였다. 고향 떠나 대도시에서 유학생이나 이른바 ‘산업역군’ ‘식모’역할을 했던 숱한 청춘들은 한 아름 선물꾸러미를 손에 들었다. 추석빔 입은 아이들과 손 놓칠세라 꼭 부여잡은 젊은 부부는 탈것 못 탈까봐 전전긍긍했다.

 열차에 올라타서도 나머지 안간힘을 써야만 했다. 좌석 표 가진 이들은 자리 찾아 앉기 위해 입석표로 올라타 공간을 가득 메운 이들 틈바구니를 헤집어야 했다. 간혹 좌석번호를 서로 들이대며 옥신각신 자리다툼도 있었다.

 버스나 기차가 출발하고 나서야 비로소 안정됐다. 같은 방향으로 가는 공간을 함께 한다는 데에서 낯선 이들끼리 통성명하고 인사도 나눴다. 줄 곧 서서가야 하는 입석객과 잠시나마 바꿔 앉기를 하거나 간식거리를 서로에게 권했다.

 비교적 오래 정차하는 정거장에서는 부랴부랴 우동을 사먹었다. 막간을 이용한 행상인들이 소리소리 질러대며 특산품도 팔았다. 망사에 든 삶은 계란은 최고의 간식거리였다. 귀성열차 향해 손 흔드는 논두렁 아이들과 마주 손을 흔들며 교감했던 기억의 편린 등등이 떠오른다.

 아마도 그 때나 지금이나 고향 길은 밤에 가도 돌에 채이지 않을 것이다. 다만 올 추석은 주변에 힘들어하는 이들이 비교적 많은 것 같아 안타깝다. 최근 천재지변으로 불행을 당한 이재민이 그렇고, 죽음을 택할 수밖에 없는 지경에 처하거나 처했던 소외된 이들이 그러하다.

 사회 지도층 그리고 스스로 부유하다 생각하는 이들은 부디 이들에게 각별히 신경을 썼으면 한다. 세상사 권불십년이라 하지 않던가. 조선시대 유학자 송익필의 ‘달을 바라보며’이란 한시를 음미하며 한가위를 맞는다.
 ‘보름달 되기 전엔 더디게도 차오더니/ 보름달 되고 나더니 쉬이도 이지러져/ 서른 번 밤중에 둥글기는 단 하루 밤/ 백년사는 우리 인생 이와 꼭 같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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