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 밤, 대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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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 밤, 대추’ 이야기
  • 최동철
  • 승인 2022.08.25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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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 추석 명절의 차례상과 신령이나 죽은 사람의 넋에게 음식을 바치어 정성을 나타내는 제사상 동쪽 편 앞줄에 으레 오르는 제수용 감, 밤, 대추를 일컬어 ‘삼색과일’이라 한다. 우리네 조상들은 이런 관습이 2100년 전에도 있었음이 창원시 ‘다호리 고분’에서 확인된 바 있다.

 그렇다면 정성스런 상차림에 왜 하필 감이 오르는가. 감나무 스스로는 결코 탐스러운 ‘감’을 매달지 못하는 데도 말이다. 제아무리 크고 먹음직한 붉은 감의 씨를 땅에 심어 뿌리 뻗고 잘 자라 감이 달린다 해도 그저 어미보다 훨씬 못한 땡감일 뿐이다.

 그래서 감나무와 비슷한 고욤나무를 ‘대리모’로 이용한다. 고욤나무를 뿌리 밑나무로 하고 감나무 가지를 잘라다 접을 붙여서 대를 잇는다. 즉, 정성껏 남의 자식을 키우는 고욤나무 덕에 감나무는 비로소 탐스런 열매를 맺는다.

 감과 고욤이 주는 교훈은 사람도 인(人)자처럼 다른 이의 도움과 가르침을 받아드리고 또 받아야 제대로 된 인격체로 거듭난다는 것이다. 감이 성스런 상에 오르는 의미는 아마도 조상이나 고인의 은덕과 유지를 잊지 않고 기억하겠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럼 밤은 왜 성스런 상에 오를까. 아마 밤만이 가지고 있는 특징 때문 일 것이다. 밤은 싹 틀 때 콩 등 대부분 작물들과는 달리 씨앗껍질은 땅 속에 남겨 두고 싹만 올라온다. 헌데 땅 속에 남아있던 껍질은 썩지 않고 그대로 붙어있다. 

 이 특이한 현상 때문에 예부터 밤나무는 자신을 낳아준 부모의 은덕을 절대 잊지 않는 기특한 나무로 여겼다. 그래서인지 밤나무 목재는 신주(神主)와 위패 등 제기용품의 재료로도 쓰인다. 고로 조상 등의 은덕을 잊지 않겠다는 의미에서 상에 올랐을 것이다.

 대추 또한 일맥상통의 여러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를테면 코로나19와 같은 염병이 나돌 때는 대추를 실에 꿰어 사립문에 걸어두거나 대추씨를 입에 물고 다녔다. 가시 돋친 대추나무에서 자란 붉은 대추는 나쁜 귀신을 물리친다고 여겼다.

 혼인하는 날 새 며느리의 첫 절을 받은 시어머니는 폐백상의 실에 꿰인 대추를 한 움큼 빼내 신부의 치마폭에 던진다. 남자 아이를 상징하는 대추를 통해 많은 손자를 기원하는 행위다. 이런 의미를 가진 ‘건강식품 대추’는 예부터 보은대추가 유명했다.
  
 최근에도 자두만한 크기의 품종 개량된 보은대추가 과일처럼 달고 맛있다며 전국의 유명세를 타고 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올 해는 작황이 좋지 않다고 한다. 이상고온 탓이다. 작년에 비해 생산량이 절반에도 미치지 못할 정도라고 한다. 

 일 년간 땀 흘린 대추농가의 시름이 이만저만 아니다. “힘내시라” 위로의 말을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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