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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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얼굴  
  • 김종례(문학인)
  • 승인 2022.08.25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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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정원은 수호신이거나 스트레스이기도 한 변덕스런 날씨를 덤덤히 받아들이며 타오름의 달 8월을 보내는 중이다. 장마철 소낙비 세례와 삼복더위 폭염 속을 번갈아 통과하며, 안간힘을 다해 결실의 계절을 기다리는 중이다. 다시 여우비 한 줄금이 절실해지는 정원의 두 얼굴을 지켜보노라면, 우리네 인생살이 여정과 별반 다름이 없음을 알게 된다. 폭우, 폭염, 폭풍 같은 우여곡절을 다 견디며 분투한 후에야, 아름다운 시절은 온다는 우주의 섭리를 깨닫는다.   
  우리 주위에는 잘나고 대단한 사람들이 우후죽순 참 많기도 하다. 하루아침에 대중적 스타로 부상하여 억대 수익금을 벌기도 하고, 외모의 성형화와 비상하는 능력과 찬란한 스펙들로 돌연한 영웅들이 많이 등장한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호감을 주며 멋진 사람으로 보이는 건 가능한 일이 아닐 것이다. 누구에게나 잔잔한 미소로 다가가 꽃몽오리 한 송이 피워준다는 건, 그런 외적인 조건만으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는 롤 모델이나 영웅이 되기도 하지만 누구에게는 파렴치한이 될 수밖에 없는 건, 우리 마음속에 양면적인 두 얼굴의 실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언제부터인가 사람끼리 접근과 소통을 망설이며 서로에 대한 거리감을 조성하는 입계의완의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대중화된 도술들이 인간세계를 점령하며 가만히 앉아서 온 세계를 공유하는 도깨비 만능 세상이 되었다. 그러나 인간은 첨단과학과 물질문명의 노예가 되어가면서, 자신의 진면목과 가치를 잃어버린 자아 상실의 시대를 살고 있나 보다. 말과 행동이 어긋나는 표리부동한 변수들, 인기영합과 거짓점수 같은 위선덩어리의 스펙들, 피해자의 고통은 안중에도 없는 인면수심의 범죄들,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사기단의 그림자와 종일 숨바꼭질하는 일상이 낯설지가 않음은 웬일인가. 부정적 사고도 습관이 되면 긍정화로 각인된다는 평범한 말이 전혀 어색하지 않음에 있을 것이다.
  모두의 영혼을 파멸시킬 것임을 알면서도 비양심 수호자들의 증가추세는 도대체 무엇에 기인함일까? 가장 큰 이유로는 양심이 돈을 이기지 못하는 자본 상업주의 시대의 특징 때문일 것이다. 현대인은 내면에 자리한 두 마음을 콘트롤하지 못하고 미지의 어디쯤으로 행복, 사랑, 소망을 찾아 헤매는 미아인지도 모른다. 즉 자신의 영혼 심지에 양심이라는 보석을 숨겨놓은 채, 대중적 물결에 휩쓸려 떠다니는 부평초인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순수한 양심의 소유자를 절실하게 갈망하며 찾고 있는 것도 시대적 요구가 아닌가 싶다. 얼마 전에 화재가 난 병원의 무명 간호사의 죽음이 우리의 가슴을 훈훈하게 데워준 일이 있었다. 의료인으로써의 양심을 버렸더라면 얼마든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상황에서, 끝까지 사명감을 다하고자 환자와 함께 죽어간 살신성인 정신은 망망한 대해의 등대가 되었다. 가짜 자신이 되어서라도 남에게 크게만 보이고자 몸부림치는 혼란과 위선의 시대에, 자신의 작은 존재는 진짜 순금이었음을 행동으로 보여준 고귀한 분이 아닌가. 언젠가는 변색될 도금을 위해 삶과 시간을 낭비하는 일은 어리석음을 묵묵히 실천한 귀감의 사례라 하겠다.
  양심이 없는 성형 얼굴이나 육신이 어찌 아름다울 것이며, 돈으로 거래하는 스펙이나 지식과 명예가 어찌 영광스러울 것인가. 비양심적 재물의 축적은 도둑의 물질일 뿐이며, 양심이 없는 예술은 타락의 늪에 빠질 것이며, 양심이 부재한 종교는 우상중의 우상일 뿐이다. 첨단과학과 물질만능 시대는 신앙인으로 사는 것조차 수월하지 않음을 시사해 주는 시대라 하겠다. 그러기에 우리들의 평화와 행복은 양심을 회복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할 것이며, 한 개인과 조직의 가치를 발견하는 것도 양심의 잣대에서 접근해야 할 것이다. 너와 나의 양심의 등불이 모여서 밝은 지역과 국가가 형성되고, 양심의 회복과 우주질서로의 순응만이 지구의 문제와 인류의 존엄은 해결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어둠을 걷어내고 광명을 밝혀줄 양심이란 영구히 썩지 않는 소금처럼, 원천적으로 불변하는 진실의 근간이기 때문이다. 그 어떠한 가식으로도 도금할 필요가 없는 순금의 본성은 영원히 빛나는 보석이기 때문이다. 창조주가 내면 깊숙이 저장해준 양심이라는 인성세포야말로 피조물로서 지켜내야 할 마지막 보루일 것이다. 상황의 모서리를 더듬거리며 길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우리는 서로의 등대가 되어줘야 할 절실한 시점이다. 우리 모두 양심의 회복과 당당해진 영혼으로 그 어떠한 경우에도 돌파구를 찾아 가야 할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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