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인면 눌곡마을 유래비에 얽힌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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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인면 눌곡마을 유래비에 얽힌 사연
  • 보은신문
  • 승인 2022.05.12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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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여년의 세월속에 유유히 흘러
눌곡 마을 유래비.
눌곡 마을 유래비.

  평생을 후진 양성을 위해 교직에 머물다 퇴직후 일상을 보내고 있는 박을수(89)선생이 9일, 자신의 고향 회인면 눌곡리(이장 유화순)에 세워진 눌곡마을 유래비에 대해 알려왔다.
  박 선생은 1933년 이 마을에서 태어나 수학한 이후 젊은 나이에 초등학교 교사로 시작해 충북지역 곳곳을 다니며 후진 양성을 위해 평생을 바쳤으며, 청주시 가덕초 교장을 끝으로 교직을 떠났다.
 고향인 보은에서도 회인초와 동광초에 근무한 전력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후진 양성에 몸바친 박 선생은 10여년 전에 부인과 사별했으며 슬하에는 4남1녀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을수 선생은 “눌곡리 마을 유래비는 정상혁 군수 당선되어 임기를 시작한 2년 뒤인 2012년에 제막했지만, 당시에는 유래비문이 준비되지 않아 비문이 없었고 그 후에 비문을 새겨 넣었다.”며 “하지만 이러한 사실을 많은 사람들이 모르는 것 같아 이렇게 전하게 됐다.”고 사유를 밝혔다.
 눌곡마을 유래비는 “눌곡리(訥谷里)는 회인면 소재지에서 남쪽으로 1킬로미터 정도 되는 도로 우측 골짜기에 위치한 마을로서 항아리의 주둥이에 해당되는 동쪽만 접게 트이고 그 밖의 삼면은 산으로 둘러싸인 항아리형의 평지에 형성된 산촌마을이다.”로 시작 된다.
이어 “전략 하고 1893년 공주부회인군 읍내면지역으로써 늪실이라 하였는데 한일횝방후인 1914년 행정구역통폐합에 따라 보은군 회인면 눌곡리가 되었다”고 쓰여있다.
또 “늪실남쪽에는 다석가구가 살던 오가리(五家里)마을이 있었으나 현재는 풍림정사만 남았으며 늪실 동쪽 구평산 밑에 영해박씨 선대의 재실인 첨소재(1916년 건립)와 관리인이 살던 가달피 마을이 있었으나 고속도록 개설로 매몰되어 흔적도 없다.”고 표기되어 있다.
계속해 “1592년 임진왜란시 영해박씨 시저 박제상공의 45세손 충립공(忠立公)이 10살 때 노비와 함께 옥천 안남에서 늪실로 피난을 와서 정착한 후로 그 자손이 번창하여 대집성촌을 이루고 그 세거지로 발전했다.”고 기록했다.
이 사실로 늪실에는 적어도 500여년전에 인가가 있엇을 것으로 추정할수 있다.
충립공의 후손들은 학문 진작과 삼강오륜 덕목 실천에 힘써 명가문으로서의 명성은 이웃 군까지 이르렀다.
구한말의 대성리학자 호산 박문호선생은 1889년에 풍림정사를 창건하고 후학양성과 학문연구에 큰 업적을 남긴 교육자이었으며, 율산 박용호 선생역시 당대의 큰 학자로 훈학에 헌신하신 교육자로 인군까지 유린들이 두분을 극히 숭앙했다.
1886년 병술 대홍수전까지 회인천은 늪실 앞에서 오가리 들판을 거쳐 송평리 앞에서 건천천과 합수되었다.
오가리는 앞개울에 별학소(別鶴沼)라는 큰 늪이 있었던 바 큰 늪이 있는 마을이라는 연유로 늪실이란 이름이 지어진 것이다.
1886년 대홍수 때 하천의 물길이 학동을 거치는 현대의 상태로 바뀌고 황폐허 된 오가리들과 하천 자리는 농지로 개간되었으며 별학소도 없어졌다.
이때의 농지 개간 때 만들어진 자갈더미 밭이 늪실 앞 들에 여러개가 있었다.
1980년도의 대홍수로 늘곡리 앞들을 모두 자길밭으로 변했고, 마을 안의 도랑과 마을길 역시 크게 파괴되었다.
정부 보조로 하천폭을 넓히고 큰 제방을 축조하는 등 하천과 농지 그리고 마을안을 정비하여 오늘날과 같은 자연환경이 되었다.
 일제 후반기에는 마을에 야학당을 개설하고 개화된 교육으로 주민 계도와 선진문화 도입에 선봉적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1945년 일제에서 해방과 더불어 이향민의 환향으로 120여호에 760여명이 거주하는 활기찬 마을이 되었었다.
1970년대부터 근대 산업국가로 발전하면서 이농 현상이 활발하게 전개되는 추세에서 눌곡리도 예외가 되지는 않았다.
그 결과 현재는 40여호에 100여명이 거주하는 한적한 노령화 마을로 전락되었다.
보은군지정 보호수 제33호인 수령 약350년인 동구의 느티나무와 함께 선인들이 물려준 전통과 미풍양속이 살아숨쉬는 활기찬 마을로 부활 영속되기를 기대하면서 이 비를 세운다.
“2012년  월  일, 박수을 짓고 마을주민일동 세우다”라고 쓰여있으며 “건립추진위원장 박병인 건립추진위원 박근수 박익수 박병민 박종화 박병우”라고 이 유래비에는 쓰여있다.
 이러한 기원 때문이지 현재 회인면 눌곡리에는 당시보다 가구수가 늘어 58가구에 107명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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