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기록하는 만년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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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기록하는 만년필
  • 양승윤 (회남면 산수리)
  • 승인 2022.03.24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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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상 서랍을 정리하다가 오래된 만년필이 나왔다. 얼마나 오랫동안 잠을 자고 있다가 깨어났는지 모른다. 어떻게 내 서랍 속에 숨어들었는지도 모른다. 써지지 않으면 쓰레기통에 던질 요량으로 잉크병을 찾아 먼지로 모자를 쓴 뚜껑을 닦고 흔들어서 잉크를 넣었더니 신기하게도 잘 써진다. 이 만년필을 아껴가며 오래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컴퓨터 이전에도 늘 필기를 했고, 연필을 깎고 볼펜 심을 바꿔가며 썼지, 그러다가 컴퓨터 자판으로 갈아타서 40년이 넘도록 독수리 타법으로 원고를 써 왔다. 국내와 인도네시아 두 곳에서 여러 권의 책(대부분 시원찮은 책이다)을 만들었으니까 양 손의 가운데 손가락이 주인을 잘못 만나 수고를 많이 한 셈인데, 아직도 할 일이 조금 남아 있다.
   중학생이 되면서 펜으로 잉크를 찍어서 썼다. 잉크가 많이 샜다. 잉크병 뚜껑이 약해서 작은 충격에도 잘 깨졌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큼직한 잉크 얼룩을 달고 다니는 가방이 흔했다. 그때 중학생 가방은 옅은 군복 색깔의 두꺼운 천으로 만들었다. 수업시간에도 잉크병이 넘어지는 소란이 심심찮게 벌어지고, 펜촉 끝이 휘어지거나 부러져서 칠판 글씨를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도 흔했다. 그때도 만년필이 있긴 있었다. 네 토막으로 분해되었다. 뚜껑과 아래 몸통 부분, 펜촉(닙이라고 함)과 잉크를 담는 고무 튜브 등이었다. 잉크를 다 쓰면, 고무 튜브를 눌러서 잉크를 빨아올렸는데, 튜브가 자주 말썽을 부렸다. 대개는 튜브에 잉크를 가득 담으려고 무리해서다. 고무 튜브와 닙 사이의 접착이 느슨해져서 생기는 사고였다. 손에 잉크가 묻고 노트와 책과 교복이 얼룩지기가 일쑤였다.
   현대식 만년필은 1884년 미국에서 만들어졌다. 루이스 에드슨 워터맨이라는 이름을 가진 보험판매원이 주인공이다. 한 해 전 그는 큰 계약 건을 성사시킬 뻔했는데, 고객이 서명을 하려고 깃털 펜(퀴일이라고 함)에 잉크를 찍다가 잉크가 쏟아져 버렸다. 당시의 모든 서명은 잉크로 쓴 것만 유효했다. 워터맨은 새 계약서를 가져오마고 했지만, 잉크가 쏟아진 것을 불길한 징조라 여긴 고객은 서둘러서 다른 보험사와 계약을 해 버렸다. 낙담한 워터맨은 잉크를 묻히지 않고 펜 속에 잉크를 저장하여 사용할 수 있는 펜을 고심하여 고안을 거듭했다. 이듬해 만년필이 탄생하였다. 워터맨은 자신이 개발한 펜과 자신이 세운 만년필 회사에 자신의 이름을 붙여 워터맨으로 명명하였다. 1954년 프랑스로 건너간 워터맨 자회사는 오늘날까지 세계적으로 유명한 만년필로 140년 전통을 이어 오고 있다.
   워터맨이 인기를 끌자 파커와 몽블랑 같은 브랜드가 등장하였다. 파커는 1892년 미국에서, 몽블랑은 1908년 독일에서 첫선을 보였다. 두 제품 모두 워터맨의 아류에서 출발했으나, 점차 고급 브랜드로 워터맨과 앞자리를 다퉜다. 곧이어 이탈리아, 영국, 프랑스에서도 자국을 대표하는 만년필을 출시하기 시작했다. 일본에서도 1918년에 파일럿트라는 이름으로 국제시장에 명함을 내밀었다. 전철 종각역에 내리면, 보신각(普信閣) 바로 옆 건물 벽에 오랫동안 한국파일럿트 만년필 광고가 보였다. 국산도 있다. 1971년 세계우수상품경진대회에서 국무총리상을 받은 아피스 만년필이다. 아피스는 70년대와 80년대까지 만년필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았으나 1989년 이후로 품절되었다. 쟈바펜도 있다. 1997년 한국파일럿트의 임원 한 사람이 퇴직하면서 만든 회사다. 처음에는 독일산 닙을 수입해서 만년필을 주로 만들었으나 점차로 일반 필기구로 다양화한 문구회사로 자리매김하였다.
   볼펜 발명 이후 만년필 시대는 저물었으나, 고급 만년필은 꾸준하게 제 자리를 지켜 왔다. 그중에서도 몽블랑이 으뜸이다. 전 세계 70여 개국에 9000개가 넘는 매장을 열고 있다고 한다. 몽블랑은 프랑스와 이탈리아 국경을 따라 뻗어있는 알프스산맥의 최고봉이자 서유럽 최고봉이다. 몽블랑 만년필에는 두 가지 상징이 있다. 뚜껑 머리에 눈 덮인 몽블랑 산봉우리가 흰색 별 모양을 하고 있고, 펜촉에는 몽블랑의 높이를 나타내는 4810 숫자가 새겨져 있다. 세계사의 굴곡 때마다 몽블랑 만년필이 역사의 증인으로 등장하고 있다. 1990년 동서독의 통일조약 서명 때도 그랬다. 1997년 11월 21일 임창렬 부총리가 몽블랑으로 IMF 구제금융신청서에 굴욕적인 서명을 했다. 그로부터 3년 9개월이 지난 2001년 8월 23일 전철환 한국은행 총재는 IMF 졸업장으로 불리는 차입금 최종상환 서류에 서명하면서 국산 아피스 만년필을 사용했다. 총재가 국산 만년필을 고집하는 바람에 한은 전 직원이 나서서 어렵사리 국산 아피스(F939형)를 구해 왔다. 역사의식이 살아있는 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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