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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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다리
  • 김옥란
  • 승인 2022.03.17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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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서 오리(五里) 숲길을 걷노라면 법주사가 보인다. 문장대 천왕봉 방향으로 산길을 조금 더 걷노라면 젊고 수려하게 생긴 소나무산이 나르시시즘에 빠져 늘 자기 얼굴을 들여다보는 수정같이 맑은 호수가 있다. 옛날, 그 호수 상류에 돌 징검다리가 있었다. 등산하려면 그 징검다리를 지나야 했다.
어느 순간, 마을에서는 호수 징검다리를 돌다리로 바꾸는 공사를 시작했다. 석조 건축양식이었다. 규모가 크지는 않았으나 품격 있었다. 어린 나는 그곳을 지나다니며 돌다리 지어지는 모습을 호기심 가득하여 바라보곤 했다.
그 돌다리가 지어지고 있을 때 마을 사람들은 “앞으로 다리 이름을 무어라고 부를까?”하고 회의를 했다. 여러 가지 이름이 나왔다.
“여기가 속리산이니 <속리다리>가 어떨까요?”라고 누군가 의견을 말했다. 속리다리, 속리산다리.... 좋은 의견들이었다. 역사를 좋아하는 우리 아버지도 가만히 계시다가 한가지 의견을 내셨다.
“옛날 세조임금님이 이곳을 지나실 때 <짐의 마음이 심히 태평하도다> 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을 책에서 읽은 적이 있습니다. <짐의 마음이 심히 태평하도다>의 ‘태평’을 붙여서 <태평다리>라고 하면 어떨까요?”
속리산 사람들은 역사성 있고 의미도 좋은 <태평다리>에 만장일치로 마음을 모았다. 그래서 소박하고 격조 높은 이 돌다리는 <태평다리>라고 이름 지어졌다. 그때부터 사람들은 소나무산 호수 돌다리를 “태평다리”라고 부른다.
“태평(太平 泰平)”은 “세상이 안정되어 아무런 걱정이 없고 평안함. 아무 근심 걱정이 없음”이라고 사전은 설명한다. <계유정난>을 일으켰던 세조임금도 사람이다. 사람인데 어찌 양심에 가책이 없으랴! 어린 조카 단종에 대한 죄책감이 태산 같았을지도 모른다. 아무리 마음속으로 부처님께 참회해도 소용없었을 것이다. 그때 세조임금은 충청도 속리산 복천사에 계시는 존경하는 신미스님이 떠올랐다.
호수 징검다리를 지날 때 세조의 마음은 물처럼 고요해져 있었다. 속리산 약수의 효험이리라. “짐의 마음이 심히 태평하도다.”라는 말은 세조 자신의 내면이 얻게 된 고요와 평안을 표현한 말이며, 동시에 앞으로 세조가 단종에 대한 속죄의 의미로 조선이라는 나라를 백성들 모두가 행복하게 잘 사는 나라로 만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했다고 본다.  
조금 전에도 나는 아버지가 이름 지은 태평다리를 지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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