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사꾼
상태바
장사꾼
  • 이장열 (사)한국전통문화진흥원 이사장
  • 승인 2022.02.17 09:0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오늘은 날씨가 갑자기 추워졌다. 희끗한 눈발까지 바람에 실려 휘날리고 있다. 마당에서 이것저것 정리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누군가 “더위 사가유! 내 더위 사가유우-”하며 대문 쪽으로 닥아 오고 있었다. 보니 우스게 소리 잘하는 친하게 지내는 지인이었다. 무슨 일로 이 눈발을 맞으며 왔나 했더니 급한 볼일이 있었던 것이다.
그는 호인에다 활달한 성격이라 사람들을 재미있게 해주는 매력이 있다. 그를 만나면 갑자기 활기가 번져오는 느낌이 들어 덩달아 즐겁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인데 더위 사라는 말에 잘되었다면서 얼른 내가 사겠다고 했다. 웃으면서 들어서는 그와 잠시 이야기를 하다가 “코로나균을 묻혀왔다”면서 빨리 나가라고 내쫓았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정월대보름(上元)이다. 한달에 한번씩 오는 보름달이지만 정월의 보름은 특히 ‘대보름’이라고 했다. 예나 지금이나 해는 본래 밝으니 밝은 줄을 모르다가 깜깜한 밤이 되면 달이 유난히 밝아 보인다. 특히 보름달의 빈틈없이 꽉 찬 모습을 보면서 저 달 같이 내게도 부족함 없이 다 이룰 것 같은 희망이 생긴다. 정월 대보름날 세시풍속중 하나인 ‘더위팔기’는 옛날의 여름 더위가 지금보다 더 심했을 것 같은 생각도 든다. 여름 땡볕에 등껍질 벗기면서 논매는 머슴의 더위고생을 생각하면 더위는 지긋지긋했을 것이다. 요즈음은 집집마다 에어컨에 냉장고가 있으니 겉 더위는 에어컨으로 식히고 속 더위는 냉동실에서 갓 나온 싱싱한 아이스크림이나 사이다, 콜라를 마시며 안팎으로 식히니 더위를 모르고 산다.
참으로 행복하고 좋은 시절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자기가 싫은 더위를 남에게 파는 행위가 괘씸하다는 생각도 든다. 삼복더위에 거저 줘도 가져갈 사람이 없는 더위를 돈을 받고 판다? 지난해 더위를 기억하고 있는 어른들은 안 속겠지만 아이들은 덥석 살 것임으로 더위장사는 추울 때 어린 아이들을 상대로 장사하는 장난이었을 것이다. 요즘도 장사꾼들은 늘 “믿진다. 안남는다”고 거짓말을 하지만 역시 많이 남는 것이 장사다.
한참이나 옛날, 시골촌놈인 내가 중앙청에 취직이 되어 상경하니 청량리에 사는 먼 집안 아저씨가 양말도매상을 하고 있었다. 고향 친척과 이웃 여자들이 올라와서 그 집에서 양말을 떼다가 행상들을 하고 있었다. 그 집에는 늘 고향사람들이 북적거렸다. 그때는 공무원 봉급도 아주 적어서 대개 외상으로 물건들을 샀다. 월부장사가 유행하던 시절이다. 공무원 봉급날 정문에는 긴치마를 휘감아 들고 서서 기다리는 술집 여자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는데 양말장사꾼들도 이때 외상수금을 했다. 생각해보면 양말장사로 고향사람들이 먹고 살았으니 역시 장사가 농사보다도 나았던 것이다. 장사꾼 이야기가 나왔으니 한마디 더 하겠다.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체제는 돈을 벌어들이는 기업가를 인민의 적이니 하면서 적대시 하면서도 기업가가 번 돈을 뺏어서 무산자에게 나눠주면서 자신도 배를 불리고 대대로 부를 세습하는 그런 세계다. 경제정책은 없고 착취정책이 전부일 뿐이다. “행복”, “위대한 수령님의 품속에서” 등 온갖 미사여구들이 허공에 날리면서도 결국은 자기가족 3대의 왕조체제의 세습이 목적이었다. 기업이 돈을 벌지 국가는 돈을 벌지 못한다. 국가가 “자력갱생”이라면서 내몰라라 하고 있는 지금 북한인민들의 의식주 책임은 자본주의식 “장마당” 여인들이 힘겹게 꾸려가고 있다. “빨갱이놈들이 하긴 뭘해? 온통 거짓말이여” 하고 듣고 있던 한 노인네가 말했다. 이 지구상에 오직 하나 밖에 없는 이 시대의 괴물인 북한식 왕조체제를 유지하기에는 최적의 체제다. 이것을 영구독제를 꿈꾸는 정치도적 집단들이 모방하려고 꿈꾼다면 정말 큰일이다. 정월대보름날 여름 무더위가 싹 가시는 것 같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