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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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옥란
  • 승인 2022.01.20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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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 집 <전화 개통>한다.”
1983년 봄 어느 날, 나는 학교 앞 하숙집에서 박경리 대하소설 <土地> 독서삼매에 빠져있다가 주인할머니의 전화 받으라는 소리에 그 집 안방으로 달려가서 우리 아버지 전화를 받았다. 그 한 통의 전화는 <우리 집 전화 개통식>하는 역사적인 순간이 담긴 전화였다.
호랑이 울음소리를 들었던 외딴 두메산골 우리 집에서 학교까지는 이십 리나 되는 먼 길이었다. 나는 산골에서 학교를 1년 다니고 대전으로 나가 다니게 되었다. 큰오빠 덕분이었다. 그때 나는 한 달에 한 번씩 집에 오곤 했다. 그럴 땐 마을까지 와서 파출소에 들어가 비상전화로 부모님께 전화했다. 외딴 산골 우리 집과 마을 파출소 간에 설치되어있는 전화였다. 그렇게 연락 드리고 산길을 걸어 오르면 마중 나오시는 부모님이 보였다.
그러다가 대학 다니던 시절의 어느 봄날, 서울의 하숙집에서 충청도 첩첩산중 우리 집 전화 개통 소식을 아버지 전화를 통하여 들으니 얼마나 특별하고 신기했는지 모른다.
1876년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이 미국에서 전화를 발명하여 특허신청을 했다.
그로부터 22년 뒤인 1898년에 우리나라에 전화가 들어왔다. 고종임금님 시절이었다.
우리나라에 전화가 들어오고 85년 지난 1983년 봄에 깊은 산골 우리 집에 전화가 들어왔다. 우리 집 전화 개통은 우리나라에서 볼 때 아주 뒤늦은 개통이었다. 워낙 궁벽한 외딴 산골인 까닭이었다. 그래서 나는 우리 집 전화 개통을 떠올리면 왠지 개화기 시대인 1898년도 우리나라 전화 개통이 떠오른다. 그토록 우리 집 전화 개통은 어렵게 이루어졌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산골 집에 전화 개통은 아버지의 집념과 의지의 결실이었는데, 이 일을 위해 아버지는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을까!
우리나라에 전화가 들어오고 꼭 100년 후인 1998년에 나는 ‘손전화기’를 샀다. 나는 신기해서 뜻있는 전화 개통식을 했다. 그것은 손전화기 전화번호에 개통식 연도인 1998년을 기억할 수 있는 “98”이라는 숫자를 넣는 것이었다. 우리나라 전화 개통과 나의 전화 개통이 98년도라는 공통분모가 있어서 웃었다.
그리고, 나는 나의 흑백 손전화기를 꼭 10년 전 이맘때에 <스마트폰> 손전화기로 바꾸었다. 신세계의 경지였다! 그 폰을 중간에 한 번 바꾸었다. 그리고 며칠 전, 다시 더 새로운 폰으로 바꾸었다. 내 친구가 선물해준 스마트폰이었다. 선물 받은 손전화기를 개통하며 나는 또 눈이 열리는 느낌이 들었다. 기술과 문명의 발전과 발달이 주는 시원함이었다.
전화의 기능이 늘 업그레이드되듯이 우리들의 아름다운 성품과 착한 지성도 늘 업그레이드되면 좋겠다. 전화는 좋은 말을 전하는 소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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