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야, 겨울나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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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야, 겨울나무야
  • 이장열 (사)한국전통문화진흥원 이사장
  • 승인 2021.12.09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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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 동안 이어진 추위로 오늘은 얼음이 두껍게 얼려있다. 낫으로 두드려도 잘 깨지지 않는다. 내복을 입었지만 쌀쌀한 아침공기가 옷 속으로 파고든다. 푸르스름한 하늘에도 칼서리가 끼어있다. 마지막 잎마저 떨쳐버린 높다란 겨울나무 위를 보니 까치 한 마리가 미동도 없이 앉아있다. 저것이 이 차가운 날씨에 나무 위에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사람들은 겨울이 오면 두꺼운 옷을 하나 둘 껴입는데 나무들은 왜, 저렇듯 옷을 벗고 서 있을까? 여름내 그 무성하던 푸른 잎들을 모두 빨강, 노랑색 등으로 예쁘게 색칠해서 온 동네마당, 아스팔트길과, 들판에 흩뿌리고 정작 자신은 헌옷조차 없이 저렇듯 발가벗고 서 있는가? 땅위에 사는 뭇 식물들은 때가 되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으며 동물들도 때가 되면 짝을 찾고 새끼를 낳아 길러 떠나보내고 짐을 벗는다.
우리네 인생 역시 다를 바 없다. 이런 반복이 몇 억만년 동안 계속되어왔을 터, 생각해보면 자연이나 사람 사는 일이나 모두 한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모두 세상이치와 법칙에 이끌려가는 존재들일 뿐, 그 법칙을 사람형상을 한 어떤 존재(?)가 만들었을 것이란 생각은 들지 않는다. 우주의 지배자(?)가 바이라스 보다도 더 작은 나의 행동을 무료하게 지켜보고만 있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우주의 법칙은 인간의 조상신이 생각하는 윤리도덕이 아니라 냉혹한 자연법칙에 따라 움직인다는 사실을 믿고 싶다. 자연은 기온과 중량, 물리적인 조건에 따라 액체,고체,기체의 세가지 형태로 변화된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전기와 자장이라는 힘에 의해 이 우주가 움직이고 변화된다. 그리고 시간이라는 비물질적인 조건까지 더해져서 3차원의 공간을 이동시킨다는 사실이다. 역사라는 것도 시간이 현존 공간을 과거로 이동시킨 결과물이며, 미래 역시 인간이 상상한 앞으로 올 불확실한 공간이다.
그렇다면 과거도 화석처럼 얼어붙어 있는 영원한 부동체 라고 단정할 수도 없지 않는가? 시간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의 한평생도 짧은듯하지만 살아보니 결코 짧은 것도 아니었다.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생활기록들과 서적과 자료들만 해도 인생을 정리할 단계에서 다 읽지도 못할 만큼 많은 분량이니 말이다. 나는 왜? 그저 술이나 마시고 놀고 즐기면서 살지 못했을까? 저 많은 자료들을 누가 읽는다고? 뭔지도 모를 자료들을 자식들이 지켜 주리라고 생각되지도 않는다. 그저 살아가는데 거추장스런 짐일 뿐인 저것을 자식들은 아버지 물건은 아버지가 가지고 가시라면서 아궁이에 처넣을 것이다. 그러면 사후에 남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다.
내가 인생을 잘못 산 것일까? 천하한량들처럼 노름에 여자들과 주색을 탐하면서 살다가 죽기 전에 “참 잘 놀다갑니다” 라고 말하며 떠나는 그런 인생보다도 못한 삶이 아닌가? 농촌에서 조용히 시골선비로 살다 가신 아버지도 만년에  “네가 그걸 알겠나? 내 죽고 나서 그거 읽어볼 사람도 없을 것이고... 다 필요없다” 하신 생각이 난다. 이제사 그것을 찾는 나에게 몇 년 전에 별세한 형수님은 “ㅎㅎ 없다.”고 하셨다. 어디 고물상에 팔았는지 아니면 엿과 바꿔먹었는지? 나 역시 별 볼일도 없는 석ㆍ박사 학위 딴답시고 애써 모은 저 많은 자료들을 오직 경제밖에 모르는 자식이 관심을 가지고 귀하게 생각지도 않을 것이다. 지금에 와서는 계륵(鷄肋)과 같은 저것들을 남 주기는 아깝고... 아예 불에 태워서 그 재를 입에다 털어 넣고 물을 마실까? 그러면 내가 가져갈 수 있을까? 칼서리 파란 하늘, 겨울나무 위에 앉아있는 저 까치도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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