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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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옥란
  • 승인 2021.10.14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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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는 따뜻한 목소리이다.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주는 이 목소리는 귀로 듣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읽어야 한다.

첩첩 산골에서 나는 대학을 서울로 올라와서 학교 기숙사에 있었다. 그 기숙사로 한 달에 한 번씩 아버지의 편지가 왔다. 편지만 온 것이 아니라 전신환도 함께 왔다. 우체국에 가서 돈으로 바꾸어야 하는 것이었다. 아버지의 편지는 늘 똑같고 간단명료했다.

“딸아이 보거라.
 잘 있느냐?
 집에는 별고 없으니 아무 걱정말고 열심히 공부에만 전념하여 훌륭한 사람이 되거라.
 애비 씀.”

펜에 잉크를 찍어 원고지에 쓰신 아버지의 편지를 읽을 때면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 편지와 전신환을 기숙사 방 안 책상 위에 펼쳐놓고서 묵묵히 하염없이 들여다보곤 했다. 전깃불도 들어오지 않고 전화도 없는 산골에서 보내오신 것 아닌가! 10리나 되는 산길을 내려가서 읍내까지 장보러 가셨을 때 자장면조차도 안 사드시면서 모아 보내주신 학비와 생활비였다. 나는 아버지의 전신환과 편지를 받을 때면 윤동주 시인의 <쉽게 쓰여진 시>가 떠오르곤 했다.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 육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 ……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 보내 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 대학 노트를 끼고 / 늙은 교수의 강의를 들으러 간다.…… ”
 
그때 나는 서울이 윤동주 시에 나오는 ‘남의 나라’처럼 낯설었다. 그래서일까. 나는 대학교 시절에 친구들한테 편지를 많이 썼다. 이것은 외로움과 방황이라는 병을 극복하는 묘약이었다.
여고시절 짝이었던 친구가 대학 때 나한테 받았던 편지를 모두 모아두었었나 보다. 얼마 전 나에게 돌려주었다. “좋은 글을 쓰는데 도움이 될까 해서 주는거야”라고 했다. 그 친구는 초등학교 교사로 은퇴했는데 편지상자에서 어떤 제자의 편지를 찾던 중에 나의 편지들을 발견했노라고 했다. 40년 만에 돌아온 나의 편지들을 읽으며 나는 많은 상념에 잠겼다. 나에게 편지를 써서 보내오시던 우리 아버지와 내가 쓴 편지를 받았던 나의 친구들을 떠올려 보았다. 나의 인생을 뒤돌아보기도 했다. 40년 만에 돌아온 편지들을 읽고 있노라니, 그 시절 내가 아버지께 받았던 편지들이 그립다. 그 편지들은 내 마음속에 사랑으로 남아있다.

너무 더웠던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다. 이 가을에 나는 그때의 아버지보다 더 많은 나이가 되어버렸다. 너 아직 살아있니? 라고 꼭 그리운 편지 하나 도착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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