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 지은 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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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 지은 밥
  • 김옥란
  • 승인 2021.09.02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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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갓 지은 밥을 좋아한다. 갓 지은 밥을 먹을 때면 대접받고 존중받는다는 느낌이 든다. 갓 지은 밥을 나를 찾아온 사람에게 먹일 때면 예우를 갖춰서 대접을 잘했다는 뿌듯한 마음이 든다. “갓 지은 밥과 갓 끓인 국이나 찌개는 보약보다 더 좋습니다”라고 예전에 말씀해주신 나의 학생 은재와 서현의 아버지인 한의사님이 나는 지금도 고맙다.

“동냥하러 왔습니다. 먹다 남은 찬밥 있으면 조금만 주세요”. 어떤 낯선 거지아주머니가 조부모님 집 대문에 서서 가녀린 목소리로 밥을 구걸했다. 그녀는 누런 광목 치마저고리를 입고 광목 두건을 쓴 모습이었는데 <흥부놀부>에 나오는 박바가지를 들고 있었다. 구걸 소리에 부엌에서 내다본 엄마가 아주머니를 향해 얼른 달려나갔다. 엄마는 “때마침 잘 오셨습니다. 지금 막 점심 밥상을 들여가려던 참이었답니다.”라고 그녀에게 친절히 말했다. 그리고 오른손으로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고 왼손으로 그녀의 손을 잡고 웃으며 안방으로 맞아들였다.
 곧 밥상 두 개가 안방에 차려졌다. 아랫목에서는 둥그런 큰 밥상에서 우리 할아버지와 일꾼 아저씨들이 둘러앉아 식사하시고 있었다. 윗목에서는 둥그런 작은 밥상에 우리 할머니, 엄마, 거지 아주머니, 세 살쯤 되는 내가 둘러앉았다. 작은 밥상에는 방금 무쇠솥에서 퍼와서 아지랑이 같은 김 오르는 보리밥, 여전히 뚝배기에서 끓고 있는 된장찌개, 열무김치, 고추장이 차려져 있었다. 작은 밥상에서 엄마는 양푼에 보리밥과 된장찌개와 열무김치와 고추장을 넣고 비빔밥을 만들었다. 우리 할머니와 우리 엄마와 나는 거지아주머니와 함께 한 양푼 속의 비빔밥을 퍼먹었다.
그일 후 얼마쯤 지났을까. 집에 아무도 없고 나 혼자 마당에서 놀고 있는데 지난번에 우리 집 안방에서 점심을 먹고 간 거지아주머니가 왔다. 두 번째 오는 것이었다. 이번에는 동냥 바가지가 없었다. 다만 두 손으로 무언가를 가슴에 품고 있었다. 거지아주머니는 말없이 나에게 걸어와 멈추었다. 그녀는 나를 세상의 가장 소중하고 귀한 보물인 것처럼 껴안으며 가슴에 품고 온 값비싼 사각 오꼬시 한 봉지를 내게 꼬옥 안겨주었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성스러운 임무를 마쳤는지 바람처럼 사라졌다. 영원히.

‘갓 지은 밥’에 대한 글을 쓰려니, 불현듯 엄마와 거지아주머니가 떠올라서 적어보았다. 내가 아기였을 때 겪은 이 일이 너무나 특별해서 나의 뇌리에 각인된 것 같다. 우리는 바쁜 현대를 살아간다. 그래서 ‘갓 지은 밥’으로 식사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갓 지은 밥’, 신의 한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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