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이 있었고 나무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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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이 있었고 나무가 있었다
  • 김옥란
  • 승인 2021.08.12 09: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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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숲이 있었고 나무가 있었다. 그 숲과 나무들은 내가 공부하러 부모님을 떠나 먼 곳에서 생활하는 동안에도 내내 나를 따라다니며 잘 자라도록 북돋아 주었고 영글어가게 했다. 그 숲과 나무들은 서점들이었다. 책들이었다. 그 사실을 나는 얼마 전에 비로소 알게 되었다.

“보은 청미서림/ 대전 문경서점/ 서울 종로서적// 긴긴 유학생활/ 외롭거나 쓸쓸할 때마다 찾아가던 //그래서 이제는 고향처럼 / 소중한 서점들이 있다” (서점순례, 김옥란, 1993)
예전에 쓴 <서점순례>라는 자작시이다. 그 서점들이 숲이었고 나무였다니......

학창시절 객지에서 지낼 때 언제나 찾아가던 숲이 있었다. 첫 번째는 초등학교 5학년 때 보은에서 만난 ‘청미서림’이라는 숲이었다. 내가 다니던 삼산초등학교 앞에 있었는데, 날마다 찾아가서 책을 읽다가 학교 뒤에 있는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두 번째는 중고등학교 시절 대전에서 만난 ‘문경서점’이라는 숲이었다. 문경서점은 시청과 도청 앞에 있었는데 선화동 우리 자취집에서 가까워 무시로 찾아가곤 했다. 세 번째는 대학교 들어가서 만난 서울의 ‘종로서적’이라는 숲이었다. 대학 생활을 위해 꿈을 품고 상경하여 마주친 서울이라는 도시는 나를 반갑게 맞아주기는커녕 한없이 무정(無情)했다. 타향은 낯설고 물설었다. 도무지 적응이 안 되었다. 나는 틈만 나면 ‘종로서적’ 숲으로 달려가 그곳에 파묻히곤 했다. 그 숲이 거기 있어 천만다행이었다.

오늘 ‘영풍문고’라는 숲에 갔었다. 숲에서 나오는 피톤치드를 들이마시다가 나무 한 그루를 사서 집으로 안고 왔다. 브라이언 헤어, 버네사 우즈가 지은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라는 신간 서적이었다. 영풍, 이것은 우리 아버지께서 쓰신 붓글씨 <백세청풍(百世靑風)>과 뜻이 비슷하다. <영풍>이라는 숲은 우리에게 “이 숲에 와서 나무를 보고 가는 사람들, 나무를 만나고 가는 사람들, 나무를 사서 안고 가는 사람들 모두 영원히 푸른 바람 되어라. 영원히 푸른 바람으로 불어라.” 덕담(德談)을 건네고 있다. 그렇다. 험난한 세상에서 나, 너, 우리가 이만큼 푸른 바람으로 사는 것은 이 숲, 이 나무들 덕분이리라.

내가 찾은 서점들은 나무였고 숲이었다. 그리고 그보다 먼저, 내가 사랑하는 나무들과 숲은 나의 책이었고, 나의 도서관이었고, 나의 서점이었다. 어디 나에게뿐이랴. 우리 인간 모두에게 그러할 것이다. 늘 숲이 있었고 나무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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