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는 세상을 지배하는 마음이란 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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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는 세상을 지배하는 마음이란 놈
  • 양승윤 (회남면 산수리 거주/한국외대 명예교수)
  • 승인 2021.07.22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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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유도 실컷 먹지 못하고 자란 막내가 아비의 사랑을 독차지하면서 누나는 물론이고 세 살 터울 형에게도 막무가내로 굴었다. 덩치까지 더 컸으므로 툭하면 형과 쌈박질하기 일쑤였다. 어느 날 두 녀석은 세 번의 경고 끝에 매를 맞게 되었다. 자식들에 대한 악역은 아내가 도맡아 했으나, 슬슬 악동이(?)로 변해 가던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는 아비가 이따금 씩 ‘뜨끔하게’ 매를 대기로 자식 키우는 역할을 분담하고 있었다. 형 놈이 ‘실실’ 여유를 부리면서 맞을 준비를 하는 동안, 막내 녀석은 몽둥이의 강도를 낮출 목적으로 아비 구두를 닦아 광을 내고 화장실 청소까지 했다.
   이런 경우를 대비하여 준비해 두었던 나무 의자 뒷다리로 형 엉덩이를 내려치는 순간 막내는 완전히 사색이 되었다. 이미 반쪽으로 쪼그라든 녀석이 부들부들 떨면서 아비 앞에 섰을 때, 형 놈이 몽둥이를 꽉 붙잡고 말했다. “아빠, 동생 것도 제가 맞을게요.” 그날 이후로 녀석은 형의 ‘밥’이 되어 형 말이라면 무조건 복종하는 착한 동생으로 변했다. 두 녀석에게 매를 더 댄 기억이 없다. 마지막 경고 전에 형제는 재빨리 눈짓을 교환해 가며 맞을 짓을 중지했다. 장가를 든 후에도 녀석은 아비 말에는 시큰둥하면서도 형의 조언은 경청하고 것 같았다. “아직 신입사원인데, 벌써 차를 사려고 하느냐”고 나무랐을 때도 그랬다. 어릴 적 그 무서운 매를 대신 맞겠다고 나섰던 형이 일찌감치 동생의 ‘마음’을 통째로 샀기 때문이다.
   사람 사는 세상의 일이란 모두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이 지배한다. 여린 가슴에 슬그머니 들어앉아 속살로 굳어버린 첫사랑이나, 몰아내려고 아무리 술을 퍼마셔도 어디엔가 숨어서 꼼짝달싹하지 않고 버티는 짝사랑도 알고 보면 바로 그 마음이란 놈의 장난질이다. 이상용의 시 ‘짝사랑 그놈’에서 그 못난/ 사랑은/ 누가/ 주인인지/ 아직도/ 모르는 것 같다/고 했다. 그러나 그 주인도 알아보지 못하는 마음을 다스리게 되면, 세상은 모두 아름다워 보인다는 것이다. 천상병 시인은 평생을 세인들의 하대(下待)와 핍박(逼迫) 속에서 살았으면서도 대표작 ‘귀천(歸天)’에서 하느님께/ ‘이 세상의/ 소풍이/ 아름다웠다’고 고하겠다/고 읊었다. 그는 마음이란 놈을 마치 몸종처럼 자유자재로 부렸음이 분명하다. 
   아내의 한결같은 평생 지론에 의하면, 아무리 수입이 많아도 지출이 더 많거나 검은 돈이 섞여 있으면 언젠가는 탈이 나게 마련이지만, 수입보다 적게 쓰고 작게나마 남에게 떼어주는 사람은 언제나 부자로 살 수 있다는 것이다. 돈을 쌓아 두고도 화병으로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도 많고, 돈 없이도 행복한 얼굴로 땀 흘리며 자원봉사를 하는 사람들도 얼마든지 있다. 이들 둘 사이에 바로 그 마음이라는 놈이 다리를 꼬고 앉아 양쪽을 번갈아 보며 ‘푸풋’하며 고소한 미소를 날리고 있다. 부자와 가난뱅이를 구분해 내는 권능까지 가진 마음은 그래서 그 좋은 돈보다도 훨씬 ‘쎈’ 놈이 분명하다. 천당과 지옥을 가르는 티켓도 그놈 손에 있다고 했으니 말이다. 
   정년퇴직 후 귀향하여 말년의 은둔지로 삼으려는 시도는 처음부터 불안했다. 고민 끝에 결심을 굳히고 보은 읍내 좁은 골목을 반나절이나 돌다가 우연히 찾아 들어간 건축공사에서 만난 젊은 친구에게 구렁이 알 같은 퇴직금을 몽땅 털어 집 짓는 일을 맡기게 되었다. 그는 말도 없고 웃지도 않았다. “요즘은 온돌 일하는 분이 없다던데, 어쩌죠?”하고 몇 차례나 질문한 끝에 겨우 “지가 해유”라는 한마디를 듣는 정도였다. 집 주변 여기저기에 버티고 서서 새로 지은 집을 위협하는 눈보라와 비바람에 약한 낙엽송을 베는 일도 그랬다. 그는 그저 고개를 한 번 ‘까딱’했을 뿐이다.
   그와 친해지고 싶었다. 처음에는 교수님이라는 호칭도 붙이지 않던 그가 집이 다될 무렵부터 조금씩 속마음을 내보이기 시작했다. 일 년에 서너 채씩 십여 년 동안 집을 지어 왔는데, 얼마 전부터 자신이 지은 집이 아름답게 보이기 시작하더라는 것이다. 돈 만큼만 집을 짓는 것이 아니라 온 마음을 다해서 집을 짓는다는 뜻이었다. 요즘도 가끔 그 젊은 친구의 안부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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