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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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밥
  • 김옥란
  • 승인 2021.07.01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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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철이 시작되었다. 장맛비가 한 달 동안 속리산과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에 쏟아져 내릴 것이다. 환희와 축복의 비가 오시길 바라고 기다린다.
비는 밥이다. 나무들과 풀들과 꽃들과 바위 솜털들이 먹는다. 비는 밥이다. 개울과 옹달샘과 시내와 우물과 하천과 강과 바다가 먹는다. 비는 밥이다. 사람들과 새들과 물고기들과 짐승들이 먹는다. 비는 그야말로 하늘에서 쏟아져 내려오는 영양 풍부한 밥이다.
비는 이름이 많다. 가랑비, 이슬비, 먼지잼비, 안개비, 는개비, 보슬비, 부슬비, 소나기, 발비, 동이비, 와락비, 여우비, 날비, 진눈깨비, 흙비, 벼락비, 장맛비, 꿀비, 단비가 비의 이름들이다. 이와 같은 비를 이주영 선생님의 <비>라는 시집은 아름다운 시로써 설명한다. 5년 전 시집 <비>가 나왔을 때, 나는 광화문 교보문고에 가서 <비>와 스프링노트와 모나미 플러스펜을 샀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비> 시집을 처음부터 끝까지 베껴 썼다.
산에는 비가 자주 내린다. 사람이 밥을 잘 먹어야 하듯이 산도 비밥을 잘 먹어야 하기 때문이리라. 시인 김소월은 <산유화(山有花)>에서 ‘산에는 꽃 피네. 꽃이 피네. 갈 봄 여름없이 꽃이 피네’ 했다. 나는 장난기 많은 어린아이처럼 소월의 산유화에 나오는 ‘꽃’을 ‘비’로 바꾸어 읊어본다. “산에는 비 오네. 비가 오네. 갈 봄 여름 없이 비가 오네.” 그토록 산에는 비가 많이 온다. 비가 오고 또 오고 또 오는 것이다. 비밥이 내리고 또 내리고 또 내리는 것이다.
비가 오면 산은 조용하다. 골짜기도 수풀도 고요하다. “쉿! 조용!” 하고는 모두가 나무들과 풀들과 꽃들과 바위 솜털들이 비밥 먹는 것을 지켜본다. 산에 비가 내리면 비밥 먹는 산을 위해 구름도 살며시 운무(雲霧) 커튼을 드리워준다. 예의 바르고 공손한 산 짐승들은 미끄럼타듯 산과 나무와 바위를 오르내리던 놀이 동작을 멈추고 동굴 속에서 비밥 먹는 자연을 지켜보고 있다. 우리 비로산장 뒤꼍에서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노루 가족도 다래 넝쿨 속에서 가만히 비밥 먹는 자연을 지켜본다. 햇볕도 슬쩍 뒤로 물러가 있어 준다.
장마철 장맛비가 넉넉하되 넘치지도 지나치지도 않게 오시기를 다시금 간절히 바란다. 소원을 담아 비 이름 하나 지어보겠다. “<고운비>는 ‘고마운 장맛비’의 줄임말이야.” 대한민국과, 대한민국 국민과, 보은과 속리산이 두루 행복한 <고운비, 고운비밥>이 내려오시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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