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경의 지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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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경의 지팡이
  • 이장열 (사)한국전통문화진흥원 이사장
  • 승인 2021.07.01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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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지구상의 동물들은 강적을 피하고 약한 놈을 잡아먹고 살아가기 위해서 시각, 후각, 청각, 촉각, 미각 등 감각기관들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모든 감각기관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 사물을 볼 수 있는 시각이다. 후각과 청각이 시각을 능가하는 동물들도 있어서 아무 어려움 없이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사람의 경우에는 모든 감각들을 다 합쳐도 시각을 능가할 수는 없다. 앞을 보지 못하면 몰래 접근해 오는 적을 미리 발견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같이 대항하여 싸울 수도 없기 때문이다.
옛날에 “봉사”라고 불려온 앞을 보지 못하는 소경들이 혼자 다닐 때는 지팡이를 가지고 좌우를 더듬으면서 길을 걸어간다. 그들에게는 지팡이가 곤충들의 더듬이 같은 역할을 한다.
그들은 모든 감각을 지팡이 끝에 집중하고 다니기 때문에 지팡이 끝에 닿는 촉감에 아주 민감하다. 순전히 지팡이에 의지하여 마른땅, 젖은땅, 풀밭, 울퉁불퉁한 길이나 개천, 숲 등을 느끼며 길을 찾는다. 그러다가 갑자기 지팡이 끝에 물씬하면서 구불텅 하는 것이 느껴지면 순간적으로 기겁하여 피하는 것이 눈뜬 사람과 같다.
이처럼 소경에게 지팡이는 생명줄과 같은 것이다. 그런데 가끔 소경의 지팡이를 강탈당하는 사고가 발생하여 불안하게 하고 있다는 기사를 오래 전에 읽은 기억이 있다.
인간이 달나라에도 가는 이 우주과학 시대 21세기에 살면서도 마음은 아직도 신화시대 사고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일부 인간들의 타분한 생각이 걱정된다.
지구에서 14억 4천만 키로미터 떨어진 토성의 고리 사이로 보이는 광할한 우주속의 미세한 점하나인 지구( “창백한 푸른 점”)의 모습을 보고 있는 21세기에 말이다. 그런데 지팡이 강도는 도적이 아니다. 멀쩡한 대낮에 눈뜬 놈이 갑자기 달려들어서 소경의 지팡이를 뺏어가는 것이다. 자기 지팡이를 노리고 뒤에서 닥아오는 줄도 모르고 순간적으로 지팡이를 빼앗긴 소경은 황당과 허탈, 분노와 함께 그 자리에 주저앉아서 오도 가지도 못하고 그저 신세타령만 하였을 것이다. 소경은 지팡이를 잃고 나서 갑자기 닥아온 암흑세계를 새롭게 경험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그 지팡이 강도는 그것을 어디에 쓰려고 그런 짓을 하는 것일까? 그 지팡이를 모셔놓고 절을 하고 비는 것도 아니라는데 말이다. 내용을 알고 보면 참으로 황당하기 그지없다. 불치병 치료를 위해서 약에 쓰려고 그런다는 것이다. 그 지팡이가 특별히 귀한 약재나무로 만들어진 것이라면 이해도 되겠지만 그것도 아니다. 소경의 지팡이가 불치병 치료에 특효라는 미신을 믿고 그런 짓을 한다는 것이었다. 소경은 눈이 없으니 정신집중을 지팡이에 의지하고 있으니 거기에 특별한 약효의미를 부여한 짓인 것 같다. 그러나 자기 병 낫겠다고 앞 못 보는 소경의 생명줄과도 같은 지팡이를 뺏어가는 행위는 형법상 무슨 죄에 해당할까? 그것은 당연히 강도행위다. 그런데 보통의 재물강도가 아니다.
전근대사회에서나 있을 법한 이런 황당한 행위 때문에 쇠작대기 지팡이가 생겼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소경들이 쇠지팡이를 들고 안심하고 길을 다닐 수 있다. 물론 쇠작대기는 삶아먹지를 못하니 그런 강도는 없겠지.
그러나 아직도 나무작대기를 짚고 다니는 소경도 있을 것이므로 그런 고약한 강도를 아주 근절 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왠지 직성이 풀리지 않는다. 일부러 나무작대기를 소태나무에 삶아서 사용하면 어떨까? 생각해보니 그것도 안 되겠다. 몸에 좋은 약은 입에 쓰다고 했는데, 얼빠진 강도들이 더 좋아할 수도 있겠다. 차라리 나무지팡이를 옛날에 사약으로 사용한 비상물에 삶아서 사용한다면 근본적으로 지팡이 강도가 근절되지 않을까? 이야말로 전근대적인 생각을 가진 자들에게는 전근대적인 처방이 좋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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