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까시꽃 향기 맡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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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시꽃 향기 맡으며...
  • 최동철
  • 승인 2021.05.20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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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탐스럽고 하얀 아까시꽃 향기가 진동하는 5월이다. 차창 열고 군내 산길도로를 천천히 운행하거나 홀로 턱 마스크 한 채 산책하다보면 아까시꽃 꿀 향기가 폐부 깊숙이 스며들어온다. 참혹한 코로나19 팬데믹도 잠시나마 잊게 해 줄 정도로 내음이 향기롭다. 마치 첫사랑 연인의 속삭임과도 같다.

 우리가 흔히 ‘아카시아’라고 부르는 나무의 정확한 이름은 ‘아까시’다. 외래어 표기법이 마련되지 않았던 1890년대, 일본인들에 의해 ‘아까시’가 우리 땅에 소개되면서 열대산 ‘아카시아’와 혼칭됐다.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도 ‘아카시아’는 ‘아까시나무’를 일상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표준국어대사전에 명시되어 있다.

 하지만 아까시나무는 북미가 원산지로 흰 꽃을 피운다. 반면 아카시아나무는 노란색 꽃을 피우는 열대성수목으로 우리나라에선 자생할 수 없으며  호주, 아프리카가 원산지다. 고로 ‘아카시아’는 ‘아까시’로 불려야 마땅하다.

 어쨌든 아까시나무가 우리나라 산 녘 곳곳에서 왕성하게 된 이유를 더듬어 보자. 박정희 대통령의 유신정권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금 60대 중후반 이상의 노인들이 초중고 학생 때 얘기다. 당시 국민들의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야 할 제1차 산업 즉, 농업 임업 수산업은 매우 열악했다. 비료 사료는커녕 황폐한 민둥산에 겨울철 땔나무조차 없었다.

 경제개발 5개년 3차 계획의 첫 번째가 발가벗겨진 민둥산에 ‘옷을 입히자’였다. 산에 나무를 심어 홍수를 막고, 경제수로 돈도 벌자는 ‘치산치수(治山治水)’슬로건을 내걸었다. 전 행정력과 국민들의 역량이 총동원되는 총력전을 펼쳤다. ‘풀씨 따기’도 그 중 하나다. 학생이나 마을 어른들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일정량의 풀씨를 따서 마을 이장에게, 학교에 내야 했다.

 경제수로는 아까시나무가 선정됐다. 산림을 울창하게 하는 가장 쉽고 좋은 수종이다. 가시가 많아 싫지만 척박한 땅에서 잘 자란다. 막무가내 뻗는 뿌리에선 새 움이 마구 돋는다. 그만큼 번식력이 강하다. 콩과의 낙엽교목으로 뿌리혹박테리아가 있어 땅을 비옥하게 한다. 겨울철 땔감 문제 해결, 양질의 꿀 생산, 좋은 목재 공급 등 무조건 심어야할 나무였다.

 허나 세상 모든 일이 ‘과하면 모자란 것만 못하다’는 ‘과욕불급’처럼 아까시나무의 폐해가 나타났다. 생존본능이 워낙 강해 주변 나무들을 고사시킨다. 산소 옆 아까시나무는 뫼를 초토화시키는 주범이다. 억척스럽고 막무가내여서 캐고 캐도 잠복해 있는 뿌리에선 끝도 없이 새 움이 얼굴을 내민다. 급기야 ‘심자’였던 아까시나무는 20여년 전 부터 ‘뽑아내자’가 됐다.

 그러나 새 움이 돋아 어린 묘목일 때 시기를 놓쳐 뽑아내지 못하면 나중에는 캐내기가 거의 불가능해지는 게 아까시나무다. 여하튼 귀히 대접받으며 천하 산야를 누볐던 아까시나무가 지금은 민폐목이 됐다. ‘늙은 인생도 그와 같다’는 생각에 동병상련의 마음이 드는 것은 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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