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쥐마을의 광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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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쥐마을의 광쥐들
  • 보은신문
  • 승인 2021.05.06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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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6>

 거개가 아는 구전설화에 ‘들쥐와 광쥐’가 있다. 서울에 사는 광쥐의 초대를 받은 시골 들쥐가, 초라하고 가난하지만 맘 편히 사는 것이 행복이라며 시골 들판으로 돌아오는 내용이다. 이솝 우화에도 ‘시골쥐와 도시쥐’가 있다. 제목이 말해주듯 내용은 엇비슷하다.

 어느 그림책을 보면, 시골 들쥐의 초대를 받은 서울 광쥐가 중절모에 선글라스 쓰고 신사복에 지팡이 휘두르며 기차를 타고 내려와 시골 역에 내린다. 들쥐는 반갑게 맞아들여 밤하늘 은하수와 반딧불이 등 시골의 아름다운 자연을 보여 준다.

 들판에 나가서는 땅에 떨어진 곡식의 낟알을 주워 정성껏 대접도 한다. 맑은 시냇물로 입가심을 한 뒤 “이 정도면 행복한 삶 아니냐”고 은근히 광쥐에게 자랑한다. 하지만 광쥐에게는 모든 게 부실하고 불편하다.

 “들쥐야! 한 번 뿐인 삶인데 왜 이렇게 비루하게 살아? 나와 같이 도시에 가자. 맛있고 기름진 음식을 배불리 먹을 수 있어” 그 말에 혹한 들쥐는 광쥐를 따라 서울로 간다. 광쥐 본거지는 맑은 물은커녕 하늘도 볼 수 없는 시궁창이다.

 광쥐는 들쥐를 주변 식당의 주방에 데려간다. 산해진미가 가득 쌓여있다. 광쥐는 거 보란 듯이 으스대며 맘껏 먹으라고 손짓을 한다. 난생 처음 기름진 진수성찬을 마주한 들쥐는 그러나 한 입만큼도 먹지 못하고 졸졸 굶어야 했다.

 먹으려고 가까이 갈 때마다 사람이 들어왔다. 그럴 때마다 ‘오금아 날 살려라’고 줄행랑을 쳐야한다. 심장박동은 숨 넘어 갈 듯 콩닥거린다. “목숨 건 위험 무릅쓰고 먹고 살아야 하는 도시쥐 생활은 나에게 맞지 않아.” 들쥐는 부랴부랴 시골 삶으로 돌아간다.

 시골쥐와 도시쥐의 이야기는 각 자가 추구하는 삶의 방식은 같을 수 없다는 교훈을 준다. 또한 삶의 형태가 다르다 해서 상대를 배려하지 않거나 무시하면 안 된다는 깨달음도 준다. 어쨌든 이제 사회현상이 바뀐 탓인지 들쥐와 광쥐의 내용도 바뀐 게 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많은 돈을 버느라 지친 광쥐들이 아늑한 시골 삶이 그리워 농촌 이곳저곳에 내려온다. 풍치 좋은 마을어귀에 어울리지 않는 아방궁 같은 대저택을 짓는다. 그리고는 시도 때도 없이 광쥐들을 초청해 파티를 연다.

 때마다 대저택 주변은 불야성이 된다. 오색초롱 불빛이 휘황찬란하다. 농촌에선 한 밤중이라 할 시간대까지 이어진다. 마치 조선시대 철없던 왕이 민생은 내팽개친 채 즐겼다는 경회루의 밤 모습 같은 느낌이다.

 어쨌든 시골생활에 찌든 들쥐들은 두둑한 마을발전기금 받았으니 할 말 못하고 참을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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