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쉽기만 한 봄꽃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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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쉽기만 한 봄꽃놀이
  • 보은신문
  • 승인 2021.04.15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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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확산추세에 있는 코로나19에 더욱 움츠려지고, 충북도의원 재선거를 치르다보니 어느새 계절감은 벚꽃이 지고 마는 때가 왔다. 예전 같았다면 보청천 주변에 삼삼오오 모여 흐드러지게 핀 벚꽃을 배경삼아 ‘인증샷’을 남기느라 봄꽃놀이에 여념 없었을 때다.

 지금은 모두가 오염된 지구에서 생존 투쟁하는 미래 공상영화에 출연한 엑스트라처럼 되어 버렸다. 흑백 내지는 컬러풀한 마스크로 각각 얼굴을 가린 채 고고한 척 먼발치서 그저 바라볼 뿐이다. 삭막하고 아쉽기만한 봄꽃놀이 풍경이다.

 자동차, 매연배출공장 없어 공해도 없고, 스티로폼이나 비닐봉지도 태우지 않아 하늘도 청명했던 더 예전의 시대 봄꽃놀이는 잔치를 연상시킬 정도였다고 전해진다. 조선시대를 이른다. 그 당시 음력 3월 삼짇날에는 다양한 봄날 세시 풍속을 즐겼다.

 엄동설한 동장군을 이겨내고 처음 돋아나온 싱그러운 초록빛 풀을 밟는 ‘답청(踏靑)놀이’를 하며 들과 산을 산책했다. 진달래꽃을 찹쌀떡에 붙여 들기름에 지져먹는 ‘화전(花煎)놀이’도 성행했다.

 갓 쓴 양반들은 매화 복숭아 살구 벚꽃 등이 만개한 곳에서 시를 낭송하고 그림을 그리는 풍류를 즐겼다. 한양의 풍습을 기록한 ‘한경지략’에 ‘필운대 옆에 꽃나무가 많아 성안 사람들은 봄날, 술병 차고 꽃구경 와서 시를 짓고 노느라 날마다 모여든다’고 쓰여있다.

 필운대는 절친 사이였던 ‘오성과 한음’ 중, 오성대감으로 알려진 이항복의 집터를 말한다. 오성은 호가 아니고 오성 부원군에서 유래한 것이다. 호는 백사와 필운, 두 개를 사용했는데 그중 필운을 따서 그의 거처를 필운대라 했다.

 당시 필운대의 살구꽃은 장안의 5대 명승 중 하나였다. 정약용, 박지원 등 당대 내로라하는 정객들이 시구를 남겼다. 특히 사도세자의 아들이자 ‘이산’으로도 잘 알려진 조선왕조의 몇 안되는 훌륭한 임금, 정조도 시 한수를 남겼다.

  ‘필운대 곳곳마다 변화함을 자랑하니/ 만 그루의 수양버들에 세상 온갖 꽃이네... 홀로 문 닫고 글 읽는 이 누구의 아들인가 춘방에서 내일 아침 다시 조서 내리겠지’. 조선 중기 제일의 화가 겸재 정선도 필운대의 만발한 봄꽃을 화폭에 담아 후세에 전했다.

 이처럼 우리네 선인들은 봄꽃놀이를 즐겼다. 또한 이러한 풍류는 자고이래로 현재까지 이어져왔다. 헌데 코로나바이러스가 모든 걸 망치고 있다. 꽃을 보며 느끼는 아름다움의 미학도, 사랑스러움도, 그리움도, 애절함도, 정감마저도 메마르게 조장하고 있다.

 때마침 보은군 말티재에 새 명소가 생겨난다 한다. 내년 봄엔 봄꽃놀이를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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