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인(賤人)
상태바
천인(賤人)
  • 이장열 (사)한국전통문화진흥원 이사장
  • 승인 2021.04.08 04:1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꽃은 아름다우나 그 귀천은 출신성분이라 할 생장지 주위환경에 따라 품위가 달라진다. 자욱한 먼지로 뒤덮힌 자동차 신작로 길섶에서 자라는 민들레를 “말똥구부리”, 혹은 “말똥구부링이”라고 부른다. 말라빠진 말똥 소똥과 동무하며 뭇 짐승들에게 밟히면서 자란다고 해서 붙은 별명이다. 독한 가시가 있는 장미나 고귀한 척하는 백합은 그런 천한 민들레와 같이 놀지 않는다. 잘 단장된 정원에서 세인들의 관심을 받으며 귀하게 자란다. 그러나 그 생명력은 사람의 손으로 키워지는 식물이 잡초와 같은 천물(賤物)을 이기지 못한다. 그래서 농민들은 비닐을 덮어서 잡초와 제배식물을 분리하기 시작했다. 잡초의 씨앗도 얼씬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도대체 잡초의 강한 생명력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동물의 경우에도 야생동물은 가축에 비해 생명력이 훨씬 강하다. 그것은 거친 자연환경의 도전을 극복하면서 면역력이 강화되었기 때문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옛날에는 아기가 태어나서 붙여주는 이름에 “개똥이”니 “바우”(바위)니 “돌바우”, “석돌이”니 하는 식으로 아무렇게나 이름을 지어 불렀다. 귀하게 기르면 질투의 귀신들이 데려간다(일찍 죽는다)고 해서 아무렇게나 던져놓고 죽든 살든 무관심한 척 함으로써 귀신마저 관심을 갖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몽고인들의 이름에 유독 그런 것이 많은데 예를 들면, ‘개자식’(너허이-후), ‘사람 아님’(훔-비쉬), ‘이름 없음’(네르-구이), ‘이게 아님’(엔-비쉬), ‘죽었다’(우흘레), ‘나쁜 개’(모-너허이)' 하는 식이다. 우리나라 고려의 ‘충(忠)’자 왕 시대에 원의 지배를 받으면서 몽고풍습이 많이 전해졌는데 그 유산이 조선왕조와 한말, 일제 강점기 까지 내려온 것이다. 아무도 관심 밖인 천물(賤物)이나 천인(賤人)의 생명력이 질기다는 인식 때문이었다. 이름이야 그렇게 지었지만 자기 자식이 천인(賤人)이 되기를 바라는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과거 왕조치하 신분사회 시대는 사람의 귀천이 태어나면서부터 결정이 되어버렸지만 지금의 자유민주 사회에서는 그런 구속은 없다. 다만 ‘돈’이라는 교환매체 때문에 돈 없는 사람이 천인취급을 받기도 하나 꼭 그렇지만은 않다. 배운 것 없고, 돈 없고, 거친 밥 먹고, 유행지난 옷 입고 다닌다고 천인이 아니다. 그 사람의 언행이 천인을 만드는 것이다. 말과 행동은 그 사람의 마음의 표출이다. 그러므로 심성이 옳지 않은 사람이 곧 천인(賤人)이라 할 수 있다. 사람은 가까이 상대하는 친구나 인물로부터 성격이나 품성을 닮아가게 된다.
 우리가 일상에서 많은 사람을 상대하다 보면 마음이 좁고 급한 사람도 만나게 된다. 그런 사람과 마주 앉아 있으면 괜히 답답하고 빨리 그 자리에서 벗어나고 싶어진다. 자기 잘못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 고집불통인 사람, 남의 충고를 절대로 듣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뭘 잘못했노? 내 잘못한 것 하나도 없다”고 자기반성이 없는 사람들이다. 모두가 불륜이라고 해도 “우리는 로멘스였다”고 고집하는 뻔돌이와 뻔순이들을 특히 정치권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후안무치라고 얼굴 두껍고 염치없는 자들이다. 그런 부류들은 자기 치부를 가리기 위한 방어에만 급급하고 자기 잘못을 지적 받으면 오히려 상대방을 공격해서 위기를 모면하려고 하는 ‘야비한(野卑漢)’ 들이다. “아따, 그 사람도(당신도) 별거 없더라”. “그래, 너나 잘해라”하는 식으로 진심어린 충고도 거부하는 ‘안하무인한(眼下無人漢)’이다. 이런 사람들이 바로 비천한 천인(賤人)이다.
 사람의 인품은 그의 친구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정조대왕의 말처럼 삼밭의 쑥이 곧게 자라는 것은 가까운 주위의 부류들을 은연중에 배우게 됨이다. 주위 환경과 교육을 통해서 인품은 성숙하게 된다. 얄팍하게 남을 속여 쾌감을 갖거나 사기를 처서 조그만 이익을 취하는 소인배 천인(賤人)들을 멀리하는 것이 현명한 삶임을 살다보면 알게 될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