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순최씨 종중, 계당 최홍림 선생 유고집 발간
상태바
화순최씨 종중, 계당 최홍림 선생 유고집 발간
  • 김태혁 실버기자
  • 승인 2021.02.04 08:5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기존 한자판 유고집, 읽기 쉽게 한글판으로 전환

 

화순최씨 계당공파 종중에서 발행한 ‘계당공유고집(溪堂集公遺稿集)’
화순최씨 계당공파 종중에서 발행한 ‘계당공유고집(溪堂集公遺稿集)’

 화순최씨 계당공파 종중에서(대표 최원태) 1월 30일, 계당 최홍림 선생 한글판 유고집을 발행했다고 밝혔다.
 기존의 유고집(遺稿集)은 한자로 되어있어 한자를 잘 아는 이가 아니면 충분히 이해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최원태 대표는 이러한 사람들과 종친들의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이춘희 계명대 한문학과 교수의 번역을 협조 받아 1년여 만에 발행에 이르렀다.
계당공 유고집에는 44편의 계당유고서, 계당즉흥시, 서한문, 계당기, 계당유고문 등이 담겨있다.
 계당집에는 수운선생 봉안문, 계당에서 즉흥으로 읊은 시, 금적산 계당을 읊다 등 각계각층의 인사들이  계당공을 그리워하고 안타까워하는 계당묘지명, 계당유고문, 계당선생 유사봉안문, 시, 등이 주옥같이 담겨있다.
계당 최홍림 선생이 모셔져있는 삼승면 선곡리 금화서원은 2019년 2월 1일 충북 문화재 자료 제95호로 지정됐다.
금화서원은 조선후기 최운 등 5인이 선향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한 서원·교육 시설로 1758년에 지방 유생 강재문(姜在文) 외 105 인이 발기해 최운(崔澐)·성운(成運)·조식(曺植)·성제원(成悌元)·최흥림(崔興霖)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했다.
 이후,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오던 중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1871년(고종 8) 훼철 되었다.
 광복 후 지방유림회의 적극적인 주선으로 1967년에 복원하였으며, 경내의 건물로는 3칸의 사우(祠宇)와 3칸의 강당, 5칸의 관리사 등이 있다.
 사우에는 최운을 비롯하여 5인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강당은 유생들이 모여 강학하던 장소였으나, 지금은 제향 때 제관들의 숙소 겸 회합장소로 쓰고 있다.
 해마다 음력 3월 중정 (두번째 丁日)과 9월 중정에 향사를 지내고 있으며, 제품 (祭品)은 7변7두(豆 )이다. 재산으로는 대지 1,400 여 평, 임야 38정보 등이 있다.
 최운 , 성운 , 조식 , 성제원 , 최홍림 , 등 5인의 배향 인물 중 계당 최홍림 자는 현좌(화순최씨 16대조 (1506~1581) 선생은 을사사화 때 가솔을 데리고 한양을 떠나 이곳 선곡리 금적산 아래에 계당이라는 서원을 건립하고 자연을 벗 삼아 시와 거문고로 은일자락 (隱逸自落)생활 하였다고 한다.
 이번에 ‘계당유고집’을 발간한 계당공파 최원태 종중대표는 “계당공의 후손인 최학수 선생과 현인과 후손들이 1804년  한문(漢文)의 편찬한 계당집(溪堂集)은 세월이 흘러 한문을 이해하는 사람이 적어 선조들의 글을 한글로 번역해 기록하는 것이 필요했다”고 번역편찬의 이유를 설명했다.
이어 “이 책의 출판이 계당 최홍림 선생의 행적이 널리 알려지고 더욱 뜻깊게 간직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