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 수상한 입춘지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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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수상한 입춘지절
  • 보은신문
  • 승인 2021.02.04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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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가 봄이 문턱에 들어선다는 입춘(立春)이다. 헌데 봄다운 기운이 썩 느껴지지 않는다. 훈풍의 봄내음은 커녕 답답하고 불안하고 화도 나서 속상한 그런 기운이다. 전해지는 건 온통 코로나19로 인한 집단 감염이 몇 명이니, 죽은 사람은 또 몇 명이니 하는 뉴스뿐이다.

 그럼에도, 봄은 오고 있음이 분명하다. 며칠 전 내린 한파 속 눈발에도 매화가 한껏 향내를 뽐내지 않던가. 이름 하여 설중매(雪中梅)다. 잔설을 뚫고 가장 먼저 핀다는 매화를 유별나게 사랑했던 이가 있다. 도산서원 매화와 함께 도안된 1000원짜리 지폐의 주인공 퇴계 이황이다.

 어느 정도였느냐 하면 매화를 주제로 지은 시 110편으로 ‘매화시첩’을 따로 만들 정도였다. 특히 매화로 인연을 맺었던 기생 두향과의 인생 마지막 사랑이야기는 애절하다. ‘별들의 고향’ 작가 최인호가 그려낸 소설 ‘유림’에 표현된 내용이 그러하다.

 퇴계 선생은 조선 중기 중종부터 인종 명종 선조까지 네 임금을 섬기며 60여개의 관직을 두루 역임했다. 성리학문의 길을 걷고자 무려 79차례나 벼슬을 사양했음에도 그렇다. 다만 결혼생활은 행복하다 할 수 없었다.

 21세에 김해 허씨와 결혼하여 세 아들을 두었으나 6년 만에 사별했다. 두 번째 부인 안동 권씨도 갑자사화를 겪으며 정신이상으로 고통을 당하다 퇴계 나이 46세 때 사별하고 만다. 그로부터 2년 후 퇴계는 단양군수로 부임하여 18세의 관기 두향을 만나게 된다.

 두향 역시 매화를 좋아했다. 두 사람은 마음이 통해 진정한 인연을 맺게 된다. 그러나 이 역시 끝까지 가지 못하고 9개월 만에 이별을 고하게 된다. 퇴계가 풍기군수로 임지를 옮기게 되었고 관리는 관기를 데리고 갈 수 없다는 규정 때문에 더는 어쩔 수 없었다.

 두향과의 이별을 앞에 둔 퇴계는 ‘죽어 이별은 소리조차 나오지 않고/ 살아 이별은 슬프기 그지 없네’ 라는 안타까움의 시를 남긴다. 그 후 두 사람은 퇴계가 70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22년 동안 다시 만난 적은 없다.

 그러나 그들은 만남 이후 여생을 서로 애틋하게 그리워하며 마음속 깊이 품고 살았다. 두향과 이별할 때 선물 받은 매화분을 그녀 보듯 온갖 정성을 다해 돌봤다. 공조판서, 예조판서 등을 거쳐 고향 안동에 도산서원을 세우고 후학 양성에 전념할 때도 그리했다.

 나이가 들어 초췌해진 퇴계는 그런 자신의 모습을 매화에게 보이기 싫다며 매화분을 도산서원 앞뜰에 옮겨 심었다. 퇴계가 단양을 떠난 후 관기생활을 접은 두향은 평생을 홀로 지내다 퇴계의 부음을 듣고는 그와의 추억이 서린  남한강에 몸을 던져 선생의 뒤를 따랐다.

 코로나19가 만연한 입춘지절, 매화향 절절한 이들의 사랑으로 대신 위로받음은 어떠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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