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암 김정선생 500주기 기념 연재를 마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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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암 김정선생 500주기 기념 연재를 마치며
  • 보은신문
  • 승인 2021.01.14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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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암집.
충암집.

국역 충암집을 접하며 가장 크게 들은 생각은 중국 고전에 대한 충암선생이 가진 (가늠해 볼 수 없는) 지식의 깊이였다.
조선시대는 학문과 철학은 물론 정치도 중국을 중심으로 한 성리학적 세계관이 철저하게 지배한 시대였다. 시대적 다름을 말 할 수 있으나 그 한계를 인정하고 접근하는 것이 역사를 대하는 올바른 자세라고 배웠다.
소위 실용주의적 교육철학에 근거한 현대교육만 받은 범부로서는 500년 전 성리학에 바탕을 둔 뛰어난 지식인이었던 충암선생이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외국어인 한문으로 축약하여 기술해 놓은 한시들의 원본은 감당할 수 없는 높은 벽이었고 한글로 번역되어 있는 많은 부분도 쉽게 이해할 수 없었다.
상소문과 편지, 잠언, 제문, 묘갈명 등으로 구성되어있는 하권의 후반부는 상대적으로 쉽게 이해할 수 있었으며 그 중 폐비 신씨의 복위를 주장하는 상소문과 어머니 봉양을 위해 사헌부 대사헌에서 사직하기를 청하는 상소문은 신하로서의 자세와 자식으로서의 효심이 잘 드러나 있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충암을 통해 지역을 알려 나가고 역사 문화적 자산으로 만드는 것은 우리들의 관심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문화유산를 지킨다는 수동적 자세에서 탈피해 잘 가꾸겠다는 능동적 방향으로 전환해야 물려받은 유산을 문화자산으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모두의 무관심을 돌아보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하얀 모래가 넘쳐났던 보청천변 옛집 주변에서 동생들과 정겨운 벗들과 함께 어울려 곡차를 나누며 충암 할아버지와 엄친의 글을 읽고 즐기는 훗날을 기약하며 부족한 글을 마친다.
/김병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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