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밤에도 신 새벽을 포기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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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밤에도 신 새벽을 포기하지 않았다
  • 보은신문
  • 승인 2021.01.07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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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충암 김정선생 500주기 기념 13편

본지는 우리지역 출신으로 기묘명현 중 한 분인 충암 김정선생(1486~1521년) 500주기를 맞아 그를 조명하는 기획물을 준비했습니다. 기획 취지에 동의해준 김병서 필자께 지면으로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지면이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 필자가 소개하는 국역 충암집 내용을 가감 없이 독자들께 알려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모자라고 부족한 글이지만 500년 전 귀향지 제주에서 절명한 보은 출신 충암 김정 선생의 삶을 반추해 보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는 필자의 말을 독자들께 드리는 인사로 대신 전해 드립니다. 본보의 취지에 동감하는 독자들의 성원과 투고를 통한 많은 참여가 있길 기대합니다. -편집부-

 

18. 어두운 밤에도 신 새벽을 포기하지 않았다

遣懷(견회)

海曲恒陰翳 / 荒村盡日風 (해곡항음예 / 황촌진일풍)

知春花自發 / 入夜月臨空 (지춘화자발 / 입야월임공)

鄕思千山外 / 殘生絶島中 (향사천산외 / 잔생절도중)

蒼天應有定 / 何用哭途窮 (창천응유정 / 하용곡도궁)

바닷가 구비에는 늘 구름이 덮여 어둡고 / 초라한 마을엔 하루 내내 바람이 부네

봄이 온 것을 아는지 꽃이 피고 / 밤이 되니 하늘엔 달이 떠오르네

천산 넘어 고향 생각하나 / 남은 생은 외떨어진 섬에 있다네

푸른 하늘이 정해준 운명이 있을지니 / 길이 막혔다 하여 울부짖은들 어찌하겠는가

少年師古訓 / 意拙謾多癡 (소년사고훈 / 의졸만다치)

道在名何用 / 官成殆亦隨 (도재명하용 / 관성태역수)

世事應前定 / 行身未早知 (세사응전정 / 행신미조지)

餘生倘有悔 / 來日庶能追 (여생상유회 / 내일서능추)

어려서 옛 훈계를 본받았으나 / 마음이 졸렬하여 그저 멍청한 일이 많았네

도가 있다면 명성이 무슨 소용이리 / 관직이 영광스러우면 위험도 따르는 법

세상 일이란 이미 정해졌으되 / 행동거지는 일찍이 알지 못했네

남은 생에 후회가 있다면 / 훗날 이를 추구해 볼 수 있으련만

*국역 충암집 하권 98~100쪽

제주 유배지에서 죽음을 예견하고 지은 시로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예정된 미래에 대한 절망감이 크게 느껴지는 글이다.

절해의 외로운 섬에서 주어진 운명을 한탄하며 자신의 죽음을 정해진 하늘의 운명으로 받아들인 절박한 심정을 느낄 수 있다.

절명사(絶命詞)인 임절사(臨絶辭)에 등장하는 굴원(전국시대 초나라 충신으로 군주의 신뢰를 잃었지만 충성을 다하다 결국 멱라수에 몸을 던져 죽음을 택한 사람)을 추모한 가생에 관련된 시를 지었던 충암은 아마도 이글을 통해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고 스스로를 위무한 글로 보여진다.

臨絶辭(임절사)

投絶國兮作孤魂 / 遺慈母兮隔天倫 (투절국혜작고혼/유자모혜격천륜)

遭斯世兮隕余身 / 乘雲氣兮歷帝閽 (조사세혜운여신/승운기혜역제혼)

從屈原兮高逍遙 / 長夜冥兮何時朝 (종굴원혜고소요/장야명혜하시조)

烱丹衷兮埋草萊 / 堂堂壯志兮中道摧 (형단충혜매초채/당당장지혜중도최)

嗚呼千秋萬歲兮應我哀 (명호천추만세혜응아애)

외딴섬에 버려져 외로운 넋이 되려 하니 / 어머님을 두고 감이 천륜을 어겼구나

이 같은 세상을 만나 이 몸이 죽게 되었으니 / 구름을 타고 하늘에 올라 옥황상제의 문에 이르리라

굴원(屈原)을 따라 높이 떠돌고도 싶으나 / 기나긴 어두운 밤은 언제 날이 새리

빛나던 일편단심 쑥밭에 묻게 되니 / 당당하고 장하던 뜻 중도에 꺾였구나

아! 천추만세에 나의 슬픔을 알리라 *국역 충암집 하권 177쪽

육신의 연은 삶과 죽음을 초월한 것을 모를 리 없었던 충암도 멀고먼 고향땅에 계신 어머니를 두고 먼저 죽음을 맞이해야하는 인간적인 고통과 번민 앞에서 만큼은 어쩔 수 없었던 것이다.

어떠한 해석과 주석도 원문보다 절절하게 충암의 비통함을 나타낼 수 없다고 본다.

충암은 전국시대 초나라 충신인 굴원을 떠올리며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까지 군주를 향한 충성심(烱丹衷-형단충)을 표출하며 자신의 절의가 옳았음을 굳게 믿고 있었던 것이다.

가생과 사마천은 굴원에 대해 초나라를 위한 충정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전국시대라는 특수한 상황을 활용해 자신을 알아줄 다른 군주를 선택하지 못하고 뜻을 펼치지 못한 점에 대해 몹시 아쉬워했다.

충암은 선택의 여지도 없었고, 충성을 다한 군주에 의해 생을 마감했으니 굴원 보다 더 불행한 시대를 살았다고 생각한다.

기나긴 어두움이 가고 또 다른 날이 언제 올까라고 의심했지만 그렇게 충암은 죽음의 시대를 지나 신 새벽을 부르는 역사에 응답했던 것이다.

그의 운명이였다.

/김병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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