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에 갇혀 사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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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에 갇혀 사는 세상
  • 양승윤 (회남면 산수리)
  • 승인 2020.12.24 08: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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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한 해가 저물고 새해가 목전으로 다가왔다. 새해 2021년은 단군기원으로 환산하면, 2333년을 더하여 4354년이 된다. 2020년 윤년이 지났으므로 2021년 2월은 다시 28일까지다. 이슬람력 라마단 금식월은 4월 12일부터 5월 11일까지고, 부처님 오신 날은 5월 19일이며, 크리스마스는 여전히 12월 25일이다. 우리가 매일 쓰는 아라비아 숫자는 원래는 인도에서 시작되었는데, 아라비아 상인들에 의해서 유럽에 전해졌기 때문에 아라비아라는 수식어가 붙게 되었다.
   숫자는 수학자들만 쓰는 것이 아니다. 장사꾼들이 당연하게 숫자에 밝다. 장사하면, 예로부터 네덜란드 사람들이 빠지지 않았다. 그들은 나직하게 말한다. “우리는 신(神)을 믿지 않는다. 우리는 숫자를 믿을 뿐이다.” 유럽의 5대 무역대국이 우연히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전 세계 유명 프로 축구팀의 총감독 60%가 네덜란드 사람이다. 히딩크도 그중 한 사람이다.
   숫자는 어디에나 쓰인다. 국가 예산도 숫자고, 유엔 통계도 숫자이며, 번지수도 숫자로 매기고, 차량 번호판도 숫자를 쓰는데, 세계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다. 차량 번호판은 1893년 프랑스에서 처음 선보였다. 당시 파라 경찰은 시속 30킬로 이상을 달릴 수 있는 모터 달린 차량은 차주의 이름과 주소 및 등록번호를 기재한 철판을 달고 다니게 했다. 1903년에는 영국에서도 차량 번호판이 등장했다. 우리나라는 1914년에 오리이자동차상회라는 이름으로 한일합작 버스회사를 설립하면서 차량 번호판 시대가 시작되었다.
   중국 사람들은 예로부터 인간의 길흉화복(吉凶禍福)을 숫자와 연결해서 생각하는 습성이 있다. 그래서 숫자 8은 ‘돈을 벌다’라는 의미의 ‘파차이(發財)’의 ‘파’ 발음과 흡사해서 최고의 인기를 누린다. 공공단체나 기업체의 중요한 행사나 결혼식 같은 일생에 한 번 있는 일은 대부분이 숫자 8을 끼고 치러진다. 2008년 베이징(北京) 올림픽 개막식이 8월 8일 오후 8시 8분에 시작되었다. 그러므로 개개인의 생활 한복판에 있는 자동차 번호판에 숫자 8이 많이 포함될수록 값이 비싸진다.
   베이징 올림픽이 열리던 해 마카오에 인접한 광둥성 주하이(珠海)시에서 있었던 자동차 번호판 경매에서 ‘C88888’과 ‘C99999’ 등 두 번호판이 당시 원화 가치로 1억 530만 원에 해당하는 80만 위안에 낙착되었다. 숫자 9도 숫자 중 가장 큰 숫자이고 ‘영구(永久)’하다는 의미의 ‘주(久)’와 발음이 같아서 중국인들이 특별하게 좋아한다. 이들에게 숫자 8과 9는 사업이 번창하여 돈을 많이 벌고, 가문과 가정이 번영하고, 부부가 해로하며, 친구 간의 우정이 돈독해진다는 믿음의 근거가 된다.
   싫어하다 못해서 혐오하는 숫자도 있다. 중국 최남단 하이난(海南) 섬 행정당국에서는 오래전에 공식적으로 차량 번호판에 숫자 4를 부여하지 않기로 했다. 숫자 4가 죽음을 의미하는 ‘스(死)’와 발음이 같아 불길하다는 생각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건물에 4층이 없고, 4호실 병실이 없으며, 어떤 일을 네 번 시도하지 않는다. 그래서 씨름도 삼판양승이나 오판삼승제가 생겼는지도 모른다. 죽음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숫자 4가 한자 독음의 죽을 사(死)와 같다고 해서 멸시당하고 있는 셈이다.
   2021년 2월은 28일이 말일이다. 2월은 왜 유독 다른 달에 비해 날 수가 모자랄까. 로마제국의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Augustus)는 자신의 이름을 딴 8월(August)이 1월, 3월, 5월, 7월 등 홀수 달에 비해서 하루가 적은데 불만을 품고 이전의 제도를 황제 직권으로 수정하였다. 그는 황제 칙령을 발동하여 자신의 달이 30일에서 31일이 되도록 2월에서 하루를 떼어 온 것이다. 그래서 7월과 8월의 날 수가 31일이 되고, 9월(30일)이 하루 적어진 것이다. 그런 연유에서일까, 서양의 시인들은 2월이 가장 추운 달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사람이 만든 숫자에 사람이 갇혀 살고 있는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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