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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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자
  • 박진수 기자
  • 승인 2020.12.17 09: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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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자” 라는 말은 어떠한 이의 죄에 대해서 거론하거나 죄라는 것 자체에 대해 설파할 때에 주로 나오는 말이다.
이 말은 비록 기독교에서 사용되지만 인간은 본질적으로 최인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존재 자체가 죄인으로 태어났고 항상 알게 모르고 많은 죄를 지어왔으므로, 죄를 지었다는 이유로 증오를 하는 것은 제 얼굴에 침뱉기와 같다고 한다.
최근 보은군에는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탄하는 시위 및 언론보도가 성행하고 있다.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역사회에 파장은 현행법을 위반해 법적인 처벌보다 더욱 가혹한 처벌이 반복되고 있다. 법적 조치로 한번 처벌받고 또다시 실명을 거론하면서 반복된 처벌을 받고 있는 것이다.
죄를 지은 사람은 당연히 벌을 받아야 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법은 악법도 법이다. 당연히 지켜야 할 법을 어기면 실명을 거론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람에게 죄는 한 번의 실수로 죄를 지을 수도 있어 절대로 사람을 미워해서는 안된다.
특히 보은군과 같은 지역사회속에서 실명을 거론하는 시위나 언론에 실명을 거론하면서 비판하는 것은 분명 죄인을 두 번 죽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죄인의 가족과 이해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까지 죄인으로 몰아 분열된 지역사회를 만들 수 있다. 자칫 죄인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죄를 반성하는 것이 아니라 반감으로 이어져 분열된 사회로 변해갈 수 있다는 점이다.
법적인 판결은 민주주의 사회를 유지하는 최소한의 법질서이다. 법적인 판결로 죄인은 반성과 최소한의 반성의 기회를 주고 있다. 하지만 법적 판결을 넘어 실명을 거론하면서 반복되는 여론몰이를 통해 사회적 문제로 확산시키는 과정에 최소한의 인권을 간과하고 있다.
사람의 인권은 죄를 지어도 최소한의 인권은 주어진다. 이러한 인권을 유린하는 듯한 실명을 거론하는 시위나 언론 보도는 분명 죄인을 두 번 단죄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우리 속담에 “핑계없는 무덤없고 처녀가 애를 낳아도 할 말이 있다” 라는 말이 있다. 이 두 속담은 결과적은 원인을 따지고 들면 모두가 합리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아야지 그 죄를 제대로 단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법 앞에는 누구나 평등해야 한다는 진리를 말하고 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온통 좌우 이념 대림은 물론 진영 논리에 갇혀 인신공격도 서슴지 않고 있다.
우리 역사에 있어 조선시대 당쟁이 다시 부활하는 느낌마져 든다. 상대의 죄나 잘못보다는 저 사람은 누구편이냐에 따라 죄보다도 더욱 큰 문책으로 단죄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지금 우리는 다양한 사회관계속에서 살고 있다. 뭐가 올바른 생각인지 뭐가 올바른 판단인지 못할 정도로 무분별한 정보속에서 판단을 흐리게 하고 있다. 법적으로 죄를 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실명을 거론하면서 또 다시 죄를 묻는 것은 과거 역사속에 일본이 남겨준 연좌제를 거듭하는 것은 아닌가 싶자.
지금 우리는 진영논리에 의해 죄보다는 사람을 미워하는 퐁토가 짙어지고 있다. 조선이 망해가던 구한말 부호들은 힘을 합쳐 외세를 극복하기 보다는 자신들의 이익만을 위해 추구하다 결국 망하는 역사를 남겼다. 법적인 처벌을 받고 있는 죄인들에게 사회적 지탄을 이끌어 내기 위한 시위와 언론보도는 자칫 분열된 보은의 지역사회를 보는 듯 하다.
사람의 죄를 거론할 때는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 라는 말을 상기해야 하는 이유는 분명 사람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한번의 실수를 영원한 죄인으로 만들어서는 안된다. 사람은 분명 바뀌고 변화하는 시키는 것은 사회적 분위기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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