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긴 먹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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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긴 먹었지만
  • 오계자(소설가)
  • 승인 2020.12.17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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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해 전이다. 그해는 나에게 최악의 가을이었다.
  사계절 중 제일 좋아하는 가을이 아주 많이 삐거덕거린다. 중간하늘에 시선을 두고 앉아서 가슴에 가득한 불만을 감당 못하고 있다. 누구를 향한, 무엇을 향한 불만인지도 모른다. 나도 설렐 수 있음을 깨닫게 해준 분을 밀어냈다. 게다가 딸은 몸에 불청객 덩이가 자라서 수술을 하기위해 병실에 누워있다. 택시를 탔다. 침묵만 차 안을 무겁게 누른다. 연세 지긋해 보이는 기사님이 푹 퍼진 내 촉각을 깨운다. “9월도 벌써 다 먹었어요.” 하시며 한숨을 쉬신다. 듣고 보니 9월 말일이다.
  “자기 것 자기가 먹었죠. 남에게 빼앗기진 않았잖아요.” 한숨 섞인 대꾸를 했다.
  “내가 먹고도 어떻게 먹었는지 흔적도 없으니 한심하지요.” 하면서 또 한숨이다.
  그도 나도 신나게 시월을 맞이하지 못하고 겨끔내기로 한숨이다. 먹긴 먹었지만  고파서다. 어느 구석에도 남은 게 없다. 자신의 능력을 탓하는 한숨일까.
현재는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하나의 고리일 뿐이라고들 한다. 그 고리가 바로 영원을 의미하는데 어찌 중요치 않을 수 있나. 그 고리가 바로 미래요 과거인 것, 중요성을 알면서 허투루 버리지는 않았을 터. 아무튼 내 몫의 시간들을 어찌 했는지 모르지만 남은 게 없으니 할 말은 없다. 내 틈서리를 빠져 나간 시간들 속에 보석이 묻혀 있다가 어느 날 빛을 발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허허로운 위로까지 해 본다.
  사람이 갈 곳의 끝을 알고 가는 것은 아니 듯이, 세월을 어떻게 먹어야 잘 먹는 것인지 모른다. 스스로 만족하면 잘 먹은 것일 게다. 아쉬움만 자우룩이 남겨 놓고 택시에서 내렸다. 무어라 할까 어떤 기시감 같은 것이 얼핏 스쳐간다. 하긴 내가 먹은 9월이 어디 한둘인가 당연한 현상이지, 그렇게 일축 해버릴 때 문득 예리한 침 끝에 찔린 듯 약하지만 날카로운 자극이 왔다. 늘 슬쩍 삼켜버리고 일축해 버렸으니 같은 되풀이가 아닌가 싶어서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서울 하늘도 가을이라 높긴 높다. 저 하늘같은 자부심을 안고 암벽이라도 비집고 들어갈 듯 했던 젊은 시절이나, 몽그라진 지금이나 먹은 시간에 대한 아쉬움은 웅숭깊게 궁글다.
  자판기 커피 한잔 들고 병원 뒤 나무벤치에 앉았다. 커피향이 사르르 나를 휘감아 보듬어 준다. 조금은 포근해 진다.
  어느 철학교수는 ‘사람다운 사람’ 이란 나이에 걸맞게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했다. 어린이는 외부의 대상에만 관심이 있고, 청소년은 자신의 내면에 빠져 고민한단다. 어른들은 외부와 내부의 조화를 찾으면서 체계 있는 삶을 꾸려가려하고, 노인들은 초월적인 것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단다. 이것이 바로 정상적인 인간의 성장과정이란다. 저지르고 후회하며 반성하고 또 저지르는 것, 우리네 인간사의 과정인가.
  신화에 등장하는 뱀 우로보로스는 자기 꼬리를 물고 있어서 시작과 끝이 반복됨을 표현 한다. 시작과 종말의 반복. 자신을 영원히 먹이로 삼는 순환 재생이다. 미래를 위해 세월을 어떻게 먹을까 고민하기보다는 끝없이 진행 중인 현재, 현재에 무엇을 심을까를 생각해야겠다. 현재가 곧 미래니까. 요란하지 않고 거대하지도 않은 작은 복을 심어서 ‘소확행’을 추수하자. 중학교 때 담임은 꿈을 크게 가져라 하셨지만 이젠 이룰 수 있는 꿈을 찾는다. 할머니에게 걸맞는 소확행이다.  
  택시 바퀴가 돌고 돌듯이 그렇게 지금 우리는 8월을 먹고 또 9월을 먹은 것이다. 무의미하게 먹든, 의미를 두고 먹든 내가 먹은 시간들을 잘 소화 시켜서 남은 삶의 거름이 되도록 내놓을 수 있으면 좋겠다. 연말이 되니까 생각이 좀 많아진다. 그동안의 연말연시처럼 반성하고 계획하는 되풀이보다는 즐기는 삶을 추구하기로 했다. 이번에 무릎 수술을 하고 자식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깨우친 이치다. 내가 즐거워야 자식들이 편한 것을 공연히 자식들에게 집이 될까봐 움츠린 생각이 자식들은 더 힘들게 된다고 녀석들이 내게 설명하고 일깨운다. 삼종지도三從之道가 생각난다. 젊은 시절 삼종지도를 삼애지도三愛之道라고 주장했던 기억이다. 부모님과 남편, 그리고 자식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이제 자식을 따르는 것이 바로 사랑이라는 이치를 깨달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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