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면 살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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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살아진다
  • 오 계 자 (소설가)
  • 승인 2020.11.12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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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장을 부리던 여름이 겨우 꼬리를 거두고 하루하루 하늘이 뼘씩 높아지는 날, 가까이 지내던 문우들과 도립교향악단의 영화음악을 주제로 하는 공연을 보러갔다.
내가 너무 큰 기대를 했나보다 싶지만 그래도 음악은 언제나 가슴을 닦아준다. 공연이 끝났지만 그 여운이 가시지 않아서 달착지근한 기분으로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내 길벗의 시동을 걸었다. 차분하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흘러나와 잠시 모든 동작을 멈추고 귀 기울이니 라디오 교육방송에서 공지영 소설 ‘봉순이 언니’를 읽어주는 게 아닌가. 엔진 소리를 줄이기 위해 살금살금 집으로 오는 길에 내 집이 시내가 아님이 얼마나 감사한지.
가족 톡방에 행복한 마음을 고스란히 옮겨 놓았더니 덩달아 자식들도 행복하단다.
그리고 며칠 후 내가 뮤지컬 배우 차지연의 팬임을 알고 있는 딸이 엄마의 기분 식을 세라 또 일을 저질러 놓는다. 서울 BBCH 아트홀에서 공연하는 뮤지컬 서편제를 예매했단다. 한구석 미안함이 있지만 설렘이 더 크다. 자식 덕에 ktx 특실까지 호강 하는 행복을 차창 밖 저 멀리 익어가는 가을도 함께 흐뭇해한다.
시간 맞춰서 관람석 자리를 찾아 앉았다. 처음부터 속마음은 살짝 ‘어째 예술의 전당도 아니고 세종문화회관도 아닐까?’ 했는데 와 보니 더하다. 무대가 한지로 만든 막이 몇 장 늘어져 있고 약간은 추레해 보였다. 그렇지만 모여드는 관객만은 질서 있고 세련된 사람들이거나 예술인 티가 묻어나는 격조 높은 관객들이다.
공연이 시작되자 무대는 대자연으로 변해 버렸다. 한지를 이용한 무빙 월(Moving Wall)에 영상이 날아와 앉으니 조명에 따라 스토리텔링이 극중 내용과 어우러져 생동감을 준다. 조명에 따라 노을을 배경으로 하는 들길이 되고 산골이 되기도 하고 서민적 한국의 미를 최대한 살렸다. 산들산들 바람까지 느끼게 해주는가하면 무대 바닥은 3중으로 돌면서 생동감을 더해준다. 이런 좋은 무대를 몰라본 내 수준이 부끄럽다.

어린 남매를 제대로 소리꾼으로 키우고 싶은 아비의 심정을 세상은 홀대한다. 그 세상을 어찌 나쁘다고 하랴. 아무리 들판이나 산골 폭포수를 찾아다니며 소리를 질러대 도 미래가 보이지 않는 것이 현실인 것을. 현대음악을 하겠다고 아들 동호는 떠나버리고 딸 송화마저 떠날까봐 아버지는 딸의 눈을 멀게 한다. 눈까지 멀게 된 주인공 송화역의 차지연이 쏟아놓는 소리는 노래라기보다 서리고 서린 한을 지둥 치듯 온몸으로 토해 낸다. 그 강렬한 기운에 무용수들 또한 무용이나 춤이라고 표현할 수 없는 몽환적인 영혼의 몸짓이다.
소리에 빠져 정상적인 가정을 꾸릴 수 없는 아버지 때문에 저승으로 가버린 어머니를 향한 원망과 그리움, 동생을 향한 걱정과 그리움, 눈먼 송화 자신의 한까지 쌓이니 질러대지 않고는 살수 없다. 땅을 치고 가슴을 치며 고래고래 고함을 칠 때마다 “살다보면 살아진다.”고 한다. 그래 살다보면 살아지겠지. 내가 살아가는 것과 살아지는 것의 차이를 어찌 말로 다 표현하랴. 송화가 토해내는 그 외침은 말이 아니라 인간의 가장 깊은 곳에서 솟구치는 절규라는 느낌이 든다. 처절한 한의 정서에 그만 나도 눈물이 고였다. 젊은 사람이 어른들의 세대처럼 깊은 한을 품고 살지는 않았을 터지만 어찌 저리도 보는 이의 가슴 바닥을 박박 긁어 놓는 연기를 할 수 있을까.
차지연의 폭발적인 에너지 뒤에 찾아오는 처절함, 그 처절함 뒤에 이은 초연한 모습은 관객을 끌어안고 하나가 되어 가슴에 여운을 남긴다. 공연이 끝났지만 한참동안 일어나질 못했다. 공연이 끝나면 왁자지껄 하기 마련이지만 공연장을 빠져나오는 모습들이 하나같이 무겁다. 여운이 깊다. 나는 서울서 보은까지 오는 내내 차지연의 울분이 귀에 쟁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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