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암 김정선생 500주기 기획연재 ②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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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암 김정선생 500주기 기획연재 ②편
  • 보은신문
  • 승인 2020.10.22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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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고향에서 잊혀져 가는 안타까운 현실
충암은 정치적인 면만 아니라 글과 그림으로도 높은 평가를 얻은 매우 뛰어난 선비로 많은 사람들의 사표가 되었음을 몇 몇 유적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전라도 순창군수 재직 때인 1510년(중종 5년) 중종반정 때 폐위된 신씨를 왕비로 복위시키고자 담양 부사 박상, 무안 현감 유옥과 함께 모여 관인을 나뭇가지에 걸어 두고 상소를 올리기로 결의한 “삼인대”에서 절의로 가득했던 삶의 흔적을 만나볼 수 있고 이를 기리기 위해 1995년부터 매년 음력 7월 그믐에 삼인 문화 축제를 개최하고 있다고 한다.
유배지였던 제주에는 사후 3백여 년 뒤인 1852년에 세운 “충암 김선생 적려 유허비”가 있어 제주에서의 자취를 엿볼 수 있으며 지금도 “제주5현” 중 한 분으로 추앙받고 있으며, 유배 기간 중 제주의 풍속을 기록한 “제주 풍토록(濟州風土錄)”은 충암집에 수록되어 있고 16세기 초중반 제주 연구의 기본 지침서로 활용되고 있다.
사후(死後)엔 영의정으로 추증되었고 불천위(不遷位) 제사 자격을 허락받아 집안의 명예를 높였고, 보은의 상현서원, 청주 신항서원, 제주 귤림서원, 순창 호산서원, 회덕 승현서원, 금산의 성곡서원 등에 제향 되어있다.
(불천위 : 나라에 큰 공훈이 있거나 도덕성과 학문이 높으신 분에 대해 신주를 땅에 묻지 않고 사당에 영구히 두면서 제사를 지내는 것이 허락된 신위를 말한다)
정작 태를 묻은 고향 보은에서는 그의 삶을 반추해 보거나 흔적을 살펴볼 수 있는 마땅한 공간이 없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다.
부지에 대한 아쉬움은 크지만 뜻있는 사람들의 노력으로 충암이 수학했던 석천암이 재건되는 등 그의 뜻을 계승하려는 움직임은 지역민과 함께 살아 숨 쉬는 역사문화를 만들어가는 노력의 일환으로 높이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충암의 고향이라는 특수성을 감안하면 크게 부족한 상태임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4.더 늦기 전에 시작하자
훈구파와 사림파의 정치적 대립이 격렬하게 일어났던 시대적 환경 탓에 그의 웅대한 뜻은 불행하게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충암을 우리와 함께 현실에서 살아 숨 쉬고 만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지금 이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몫이다.
충암을 역사의 그늘에서 온전히 벗어나게 하기 위해서는 고향인 보은에 기념관 건립이 마땅하지만 지역 자체의 힘만으로는 어려운 현실임을 부인할 수 없다.
기념관 건립은 시간이 걸리더라고 가야할 길로 꼼꼼한 장기적 계획을 세워 반드시 실행시키도록 함께 노력해야 할 것이다.
뛰어난 학문을 바탕으로 자주적 성리학을 주창했던 백호 윤휴는 충암의 시 “贈釋道心(증석도심)”에 대해 “이 시는 우리나라에 전무후무한 것일 뿐만 아니라 그 이상 가는 작품”이라 평가하며 “알아보는 자가 없어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지 못했던 것이다”라고 안타까워했다.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더 많이 생기기 전에 움직여야 한다.
외면할 수 없고 절대로 묻어두면 안 될 충암과 그의 글 하나하나는 소중한 지역의 문화유산이다.
다가 올 2021년은 충암이 제주 유배지에서 사약을 받고 36세의 젊은 나이로 절명한 지 500년이 되는 해다.
“鳴呼千秋萬世兮應我哀 (명호천추만세혜응아애)”
“아! 천추만세에 내 슬픔을 알아주리라”
사약을 받은 충암의 절명시인 임절사(臨絶辭)의 마지막 부분이다.
더 늦기 전에 작지만 꼭 필요하고 할 수 있는 일부터 찾아내어 시작해야 한다.

(1)시비(詩碑)를 세우자
“충암 김정 선생 시비”를 세우는 것도 그 작업 중 하나일 것이다.
충암집 대부분의 글들은 자연과 이별, 고향과 어머니를 향한 애틋한 마음 등 모든 사람들로 부터 공감을 받을 수 있는 소재로 되어있고, 특히 지역의 명산인 속리산과 구병산에 대해 남긴 글은 고향에 준 선물로 매우 소중한 문화유산이라 할 수 있다.
그런 글들이 지역민과 함께 숨 쉴 수 있는 작은 공간들을 만들고 가꿔 나가야 한다.
마땅한 장소를 선정해 많은 사람들이 함께 누리고 즐길 수 있게 한다면 그 자체가 새로운 명소가 되고 문화적 자산이 되는 것이다.

(2)충암로 명칭을 다시 활용하자
보은읍 중앙을 관통하고 있는 도로명을 충암로(장신교~동다리)에서 다른 이름으로 변경한 어처구니 없는 행동을 하며 충암 관련 유적은 재건하는 등 앞뒤가 맞지 않는 근시안적 접근으로는 지역의 소중한 역사문화도 지킬 수 없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지역의 문화적 가치를 고양시키기 위해 충암로 명칭을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주민과 함께 반드시 강구해야 할 것이다.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도로명 주소를 지역이 배출한 인물과 유적을 활용해 만들어 역사문화를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가까운 옥천에서는 “지용로”, “향수길”을 통해 정지용 시인의 고향임을 자연스럽게 연상시키고 있고, 난계 박연의 고향인 영동도 “난계로”란 도로명을 사용하고 있음을 참조해야 한다.
충암로, 정이품송로, 고봉정사로, 병암로, 원정로, 삼년산성로, 노고산성로, 매곡산성로, 상현서원로, 오장환로, 박맹호로등 도로명 주소로 활용할 수 있는 인물과 유적등 문화적 자산이 넘쳐나는 곳이 우리 지역이다. (다음호에 계속)
/김병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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